지구에서 가장 높이 자란 생명체는 116미터입니다. 캘리포니아 북부 어느 숲에 숨어 있는 레드우드 한 그루, 이름은 하이페리온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미 828미터짜리 건물을 세웠습니다.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입니다. 우리는 800미터를 쌓는데 자연은 왜 100미터 언저리에서 딱 멈출까요. 숲에서 햇빛을 두고 벌이는 경쟁을 생각하면 한 뼘이라도 더 자라는 쪽이 늘 유리할 텐데 말입니다.
답이 좀 엉뚱한 데 있습니다. 나무가 아니라 물에 있습니다.
「빨아올린다」는 말부터 틀렸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뿌리가 물을 빨아올린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나무에는 심장도 펌프도 없습니다.
설령 완벽한 진공펌프를 나무 꼭대기에 달아 놓는다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대기압이 물기둥을 밀어 올릴 수 있는 높이는 10.3미터가 한계입니다. 1기압이 받칠 수 있는 물의 무게가 딱 그만큼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3층 높이죠. 그 위로는 아무리 세게 빨아도 물이 따라오지 않고 그냥 끊어집니다. 뿌리가 삼투압으로 밀어 올리는 힘도 규모가 비슷하고, 키 큰 침엽수에서는 그마저 잘 관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116미터를 올리는 힘은 아래에 없습니다. 위에 있습니다.
잎이 마르면서 사슬을 끌어올립니다
1894년 더블린에서 식물학자 헨리 딕슨과 물리학자 존 졸리가 짧은 보고를 하나 냅니다. 이듬해 정식 논문으로 정리한 그 설명이 지금도 교과서에 있는 응집력-장력설입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잎 뒷면의 기공에서 물이 쉬지 않고 수증기로 빠져나갑니다. 증산이라고 하죠. 그런데 물 분자는 서로 손을 아주 세게 맞잡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관 속의 물은 방울방울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뿌리에서 잎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진 하나의 긴 사슬입니다. 맨 위에서 한 분자가 증발해 빠져나가면 그 사슬 전체가 조금씩 딸려 올라옵니다.
빨대가 아니라 밧줄입니다. 밑에서 미는 게 아니라 위에서 당깁니다.
그리고 당기는 일을 하는 것은 나무가 아닙니다. 햇빛과 마른 공기입니다. 나무는 관을 놓고 기공이라는 밸브를 여닫을 뿐, 물을 올리는 에너지는 태양이 댑니다. 종이수건 끝을 물에 담그면 물이 저절로 타고 올라가는 것과 같은 힘을, 나무는 116미터 규모로 쓰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는 대가가 붙습니다. 기공은 원래 이산화탄소를 들이려고 여는 문인데, 열면 물이 나갑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 한 분자를 붙잡는 값으로 물 분자 수백 개를 내보냅니다. 나무가 하늘로 물을 올리는 건 물을 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밥을 먹으려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입니다.
팽팽한 줄은 끊어집니다
당긴다는 건 물기둥이 음(-)의 압력, 그러니까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상태로 매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당대 학자들이 딕슨과 졸리의 설명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116미터까지 물을 들어 올리려면 중력만 이겨도 11기압이 넘게 필요합니다. 물관 벽과의 마찰까지 더하면 꼭대기 잎에 걸리는 장력은 20기압 안팎이 됩니다. 그 물은 눌려 있는 게 아니라 당겨져 있습니다.
이상한 건, 물 자체는 이보다 훨씬 잘 버틴다는 사실입니다. 깨끗한 물을 밀폐해 당기는 실험에서는 수백 기압에 해당하는 장력에도 물기둥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무 안에서는 20기압 언저리에서 사고가 납니다.
원인은 물이 아니라 관입니다. 물관 벽에는 옆 관과 통하는 아주 작은 구멍들이 있는데, 옆 관에 이미 공기가 들어 있으면 팽팽하게 당겨진 물이 그 구멍으로 공기를 빨아들입니다. 그 순간 물기둥이 툭 끊기면서 기포가 생기고, 그 관은 그대로 막힙니다. 공동현상과 색전이라고 부릅니다. 물길 하나가 죽는 겁니다.
그래서 122미터에서 130미터
2004년, 조지 코크 연구팀이 이걸 확인하러 세쿼이아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갔습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나무, 112.7미터였습니다.
꼭대기 잎들은 늘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잎이 작고 두껍고 뻣뻣해지고, 기공을 오래 열어 둘 수 없으니 광합성도 떨어집니다. 뿌리 밑에 물이 넉넉해도 그렇습니다. 땅이 마른 게 아니라 거리가 먼 겁니다.
연구팀은 높이에 따라 잎의 성질이 변하는 기울기를 외삽해 한계를 계산했습니다. 122미터에서 130미터. 부러지거나 벼락을 맞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요.
하이페리온이 116미터인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나무 위에는 물리 법칙이 못을 박아 두었고, 그 못의 위치가 대략 그쯤입니다.
거인들이 안개 띠에만 사는 이유
제가 이 이야기에서 제일 재미있어 하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이 거인들이 하나같이 미국 서부, 그중에서도 태평양 안개가 닿는 좁은 띠에 몰려 있다는 점입니다.
레드우드는 안개에서 물을 얻습니다. 안개가 우듬지에 맺혀 땅으로 떨어지는 몫이 여름철 물 공급에서 3분의 1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추정이 있고, 젖은 잎은 증산 자체를 늦춥니다. 게다가 이 나무는 잎 표면으로 물을 직접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뿌리를 거치지 않고요.
즉 안개는 물기둥을 그만큼 덜 당겨도 되게 해 줍니다. 116미터라는 기록이 하필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나온 건 흙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곳이 위에서 물을 대주는 몇 안 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나무가 먼저 죽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기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붙습니다.
가뭄이 오면 흙이 마르고, 같은 물을 올리는 데 더 센 장력이 필요해지고, 공기방울은 더 쉽게 생깁니다. 그래서 극심한 가뭄에서는 작은 나무보다 크고 오래된 나무가 먼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평소부터 물길을 가장 팽팽하게 당겨 쓰고 있던 나무들이니까요.
2012년에 한 연구팀이 세계 81개 지점의 226개 수종을 모아 봤더니, 기후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나무가 자기 한계 장력에 아주 가깝게 붙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유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조금만 더 마르면 넘어갑니다.
덧붙이면, 지금 우리가 감탄하며 올려다보는 원시림 레드우드는 원래 있던 것의 5%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100여 년 전에 베였습니다. 위태로운 5%인 셈이죠.
하늘을 흐르는 강
그렇게 증발한 물은 어디로 갈까요.
브라질의 안토니우 노브리는 아마존 숲이 하루에 하늘로 올려보내는 물의 양을 200억 톤으로 계산했습니다. 같은 날 아마존강이 대서양으로 흘려보내는 물이 170억 톤 남짓입니다. 숲이 강보다 많은 물을 옮깁니다. 방향이 반대고, 통로가 나무일 뿐입니다.
그 수증기는 안데스산맥에 막혀 남쪽으로 꺾이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브라질 남부와 라플라타 유역의 농경지 위에 비로 내립니다. 노브리는 여기에 「하늘을 흐르는 강」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대목이 제일 뼈아픕니다. 그 비를 받아 콩이 자라는 밭의 상당수는 숲을 밀어서 만든 자리입니다. 그 밭에 비를 대주던 것이 바로 밀어낸 숲이었던 겁니다. 숲이 줄면 비가 줄고, 비가 줄면 남은 숲이 더 마르고, 그렇게 초원이 되었다가 마른 땅이 됩니다. 사막은 저절로 생기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 밥상에서 끝납니다. 한국이 쓰는 콩과 사료 곡물의 상당량이 브라질과 미국에서 옵니다. 지구 반대편 나무들이 매일 하늘로 올려보내는 물이 잘 돌아야 우리 장바구니도 조용합니다.
오늘 저녁상에 두부 한 모가 오르면 한 번쯤 떠올려 봐도 좋겠습니다. 그 콩 한 알 안에는, 심장도 펌프도 없이 오직 햇빛과 마른 공기의 힘만으로 어느 나무가 하늘로 끌어올린 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 물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내린 자리에서 그 콩이 자랐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