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유럽의 여름은 오지 않았습니다. 늦서리가 내리고 비가 그치지 않아 작물이 상했고 곡물 가격이 뛰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호에 머물던 메리 셸리는 밖에 나가지 못한 채 실내에서 괴물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해를 사람들은 「여름 없는 해」라고 불렀습니다.
그보다 2년 전, 조선의 농민들이 겪은 것은 정반대였습니다. 여름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보리가 여물지 못했고 모를 낼 논에 물이 없었습니다.
둘 다 흔히 「소빙하기의 끝자락」으로 묶입니다. 그런데 한쪽은 차갑고 젖었고, 다른 쪽은 메말랐습니다.
소빙하기는 하나의 긴 겨울이 아니었습니다
2019년 『네이처』에 실린 연구가 이 이름을 흔들었습니다. 전 지구 고기후 자료로 지난 2천 년을 분석했더니, 산업화 이전에는 전 지구가 동시에 추웠던 시기가 없었습니다.
지난 천 년 중 가장 추웠던 때, 그러니까 흔히 소빙하기라 부르는 그 시기조차 지역마다 어긋납니다. 중부·동부 태평양은 15세기, 북서유럽과 북미 남동부는 17세기,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19세기 중반이 가장 추웠습니다.
그러니 유럽의 강이 얼었다고 해서 같은 해 조선도 추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북반구 평균이 조금 낮아졌다는 사실과 한반도의 어느 여름에 비가 왔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그리고 농사에서는 두 번째 질문이 훨씬 중요합니다.
연평균기온이 0.5도 낮은 해와, 모를 낼 때 물이 없는 해 중에 농부를 무너뜨리는 건 후자입니다. 꽃 필 때 냉해가 오는가. 여물 때 비가 계속되는가. 수확 직전에 서리가 내리는가. 평균이 아니라 달력입니다.
그래서 소빙하기를 정확히 부르자면 「계속 추운 시대」가 아니라 「농사 달력이 자주 흔들린 시대」입니다.
흉년과 대기근 사이
여기서 진짜 질문이 나옵니다. 날씨가 나빠지면 모두가 흉년을 겪는데, 왜 어떤 흉년만 대기근이 될까요.
기근은 생산량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곡식과 사람 사이에는 관문이 여럿 있습니다.
첫째, 소입니다. 조선 농가에서 소는 고깃감이 아니라 동력원이었습니다. 밭을 갈고 짐을 날랐습니다. 우역이 번져 소가 죽으면 그해 운송만 멈추는 게 아닙니다. 다음 해 논밭을 갈 능력까지 사라집니다. 기후 충격은 작물을 때리고, 가축 전염병은 회복할 힘을 때립니다. 이 둘이 겹치면 흉년은 한 해에 끝나지 않습니다.
둘째, 창고와 배입니다. 곡식이 조금 남아 있어도 창고가 비었거나 남는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으로 옮길 수단이 없으면 사람은 굶습니다. 시장에 곡식이 있다는 말은, 살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답이 되지 못합니다.
셋째, 세금과 구휼입니다. 흉년에도 조세와 빚을 갚아야 한다면 농민은 먹을 곡식만이 아니라 종자와 농우와 땅까지 팝니다. 그러면 다음 해 생산 능력도 함께 사라집니다. 환곡은 원래 춘궁기에 빌려주고 추수 뒤 돌려받는 안전망이었지만, 재고가 모자라거나 운영이 왜곡되면 안전망이 빚의 통로로 바뀝니다.
이 구조가 가장 잔혹하게 드러난 게 17세기 후반입니다. 1670~1671년의 경신대기근, 1695년부터 이어진 을병대기근이 그렇습니다.
해남의 윤이후가 남긴 개인 일기 『지암일기』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현장의 재난은 단순한 이상저온이 아니었습니다. 가뭄 뒤에 저온이 오고, 벌레 피해와 또 다른 가뭄이 이어졌습니다. 곡가가 뛰고 굶주린 사람과 전염병이 늘었습니다.
제 눈에 가장 오래 남은 대목은 이겁니다. 많은 노비와 토지를 가진 집조차 곡식을 마련하려고 땅과 농우를 팔았다는 기록입니다. 재산이 있다는 것과 당장 먹을 곡식이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이 시기 조선은 청에서 곡물을 들여왔습니다. 17세기 초에는 조선이 중국 쪽으로 곡물을 보내던 때가 있었는데, 세기말에는 방향이 뒤집혔습니다. 같은 기후권 안에서도 어느 나라에 재고가 있었는지, 국경 너머로 곡물을 옮길 재정과 외교가 있었는지가 생존을 갈랐습니다.
흉년은 한 해의 수확 실패일 수 있습니다. 대기근은 실패가 다음 실패를 만드는 자기증폭 구조입니다.
1814년, 그리고 2년 뒤
2025년 『Climate of the Past』에 실린 연구가 조선의 두 기근을 다뤘습니다. 1809~1810년과 1814~1815년입니다.
1809년 미확인 화산의 대분화부터 1815년 4월 탐보라까지, 크고 작은 분화가 잇따른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아시아 몬순 지대의 여름이 몹시 건조했고, 벼농사가 크게 실패했습니다. 가뭄의 정도는 지역마다 달라, 남부인 전라도와 경상도의 피해가 훨씬 컸습니다.
여기서 시간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1814년 조선의 가뭄과 기근은 1815년 4월 탐보라 분화보다 먼저 시작됐습니다. 탐보라가 이 기근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연구는 사망 규모도 추정합니다. 3년마다 이뤄진 호구 조사의 호수 변화로 계산해, 1809~1810년에 102만 4,198명(전체의 7.8%), 1814~1815년에 231만 5,014명(17.8%), 합쳐 약 24%라고 적었습니다.
이 숫자는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조선의 호적은 조세와 군역을 매기는 장부였고, 호수는 사망 말고도 유랑·은루·행정 사정으로 줄어듭니다. 사망자 수라기보다 한 사회가 장부에서 사라진 규모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이 두 해에 조선 남부에서 벌어진 일은 흉년이 아니라 대기근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논문에서 제가 가장 놀란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유럽이 「여름 없는 해」로 무너진 1816~1817년, 조선은 멀쩡했습니다.
그해 조선도 기온이 떨어지고 강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유럽·북미 동북부와 같은 방향의 충격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작황은 보통이었고, 곡가는 안정적이었으며, 농민 봉기도 없었습니다.
2년 전에는 남부가 무너졌는데, 세계가 함께 흔들린 해에는 버텼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건 추위가 아닙니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 불과 2년 차이입니다. 날씨의 세기만으로는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해에는 가뭄이 농사 달력의 가장 아픈 지점을 정확히 때렸고, 어떤 해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작물과 소, 창고와 배, 세금과 구휼이 버텨 주었는지가 결과를 갈랐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소빙하기 내내 무너지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18세기에는 농경지가 늘고 집약농업과 지역시장이 발달했으며 인구도 증가했습니다. 사람들은 물을 관리하고, 파종과 수확의 순서를 조절하고, 보리와 조·기장·메밀·콩을 섞어 심었습니다. 한 작물이 실패해도 다른 작물이 남도록요. 1763년 조엄이 대마도에서 들여온 고구마도 그런 방어선 하나였습니다. 만능은 아니었습니다. 추위에 약하고 저장이 어려웠고, 도입 즉시 기근을 없애지도 못했습니다.
새 작물과 기술은 재난을 없애는 마법이 아닙니다. 실패가 한곳에 몰리지 않게 하는 장치입니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다른 사건입니다
여기서 소빙하기를 지금과 같은 현상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소빙하기의 변동은 화산과 태양활동, 바다와 대기의 내부 변동 같은 자연 요인이 컸고, 시기와 강도가 지역마다 크게 달랐습니다. 반면 오늘의 온난화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배적 원인이고, IPCC는 지구 표면이 1850~1900년 대비 약 1.1도 따뜻해졌다고 평가합니다.
앞서 인용한 『네이처』 연구의 다른 쪽 결론이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지난 2천 년 중 가장 따뜻했던 시기는 지구의 98% 이상에서 20세기였습니다. 과거의 온난·한랭기는 지역마다 어긋났는데, 지금의 온난화만 거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원인은 다른데, 농업에 남는 질문은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평균기온이 얼마나 변했는가만 볼 것인가, 아니면 파종기의 가뭄과 개화기의 고온과 수확기의 폭우처럼 달력이 흔들리는 지점을 볼 것인가. 한 품종의 최고 수량만 높일 것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위험에 견디는 작물을 함께 준비할 것인가. 국내 생산량만 계산할 것인가, 아니면 종자와 비료와 사료와 에너지, 창고와 항만과 무역까지 하나의 식량 시스템으로 볼 것인가.
방어선은 넷입니다
소빙하기의 조선이 남긴 교훈은 「추위가 무섭다」가 아닙니다.
첫째, 서로 다른 위험에 버티는 작물과 품종. 둘째, 종자와 가축과 물과 흙을 다음 해까지 지키는 능력. 셋째, 남는 곳의 식량을 부족한 곳으로 옮기는 비축과 물류. 넷째, 값이 올라도 가난한 사람이 식량에 닿을 수 있게 하는 제도.
하나가 흔들리면 흉년이 됩니다. 여러 개가 동시에 무너지면 재난이 다음 계절을 먹어 치우기 시작합니다.
기후는 흉년의 위험을 만듭니다. 그런데 흉년을 대기근으로 키우거나 거기서 멈추게 하는 것은 늘 그다음에 작동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1816년의 조선이 조용했던 이유도, 1814년의 전라도와 경상도가 무너진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