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우리 바다의 평균 표층수온은 18.74도였습니다. 57년 관측 사상 가장 높았습니다. 고수온 특보는 7월 24일부터 10월 2일까지 71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특보 제도를 시작한 2017년 이후 가장 길었습니다.
그해 고수온으로 죽은 양식 생물의 피해액은 1,430억 원입니다. 우럭이 583억, 굴 120억, 전복 117억, 멍게 114억, 넙치 99억. 2012년 이후 가장 큰 피해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는 짚고 가겠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3년 만에 몇 배”라는 식으로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연도별로 보면 2021년 292억, 2022년 10억, 2023년 438억, 2024년 1,430억입니다. 들쭉날쭉합니다.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143배가 되기도 하고 5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그래프는 만들기 쉽고, 만들기 쉬운 그래프는 대개 상대편에게도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정직한 문장은 이겁니다. 2024년은 수온도, 특보 기간도, 피해액도 관측 이래 가장 나빴습니다.
바다만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해 전국 평균기온은 14.5도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고, 폭염으로 가축 168만 9천 마리가 죽었습니다. 전년보다 88만 1천 마리가 늘어난 숫자입니다. 벼멸구 피해는 1만 7,732헥타르, 그중 전남이 9,261헥타르였습니다.
이 청구서를 받아 든 어가와 농가에게 “기후변화를 믿으십니까”라고 묻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믿든 안 믿든 청구서는 이미 도착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믿고 있습니다
기후 이야기를 하면 늘 같은 진단으로 끝납니다. 아직 안 믿는 사람들이 문제다, 그러니 더 알려야 한다.
숫자를 보면 이상해집니다. 2023년 국민환경의식조사에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답한 국민은 93.7%였습니다. 회의론자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런데 2025년 조사에서 성인 2,000명에게 가장 시급한 에너지 현안을 물었더니, 1위는 전기요금 안정화 36.5%였습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24.4%로 2위였습니다.
같은 해 다른 조사에서는 환경보전을 경제성장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2023년 52.4%에서 42.2%로 떨어졌습니다. 2년 만에 10%포인트 넘게 내려간 겁니다.
폭염은 심해지는데 우선순위는 내려갑니다. 저는 이걸 오랫동안 “아직 덜 알려져서”라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게 틀렸습니다.
잘 아는 사람일수록 더 벌어집니다
기후 커뮤니케이션에는 오래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지식 결핍 모형이라고 부릅니다. 안 믿는 건 몰라서다, 그러니 알려주면 된다. 데이터를 더 보여주고, 그래프를 더 그리고, 논문을 더 인용하면 된다.
2012년에 이 전제가 정면으로 깨졌습니다.
예일대 댄 케이헌 연구팀이 미국 성인 1,540명을 조사해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연구입니다. 연구진의 가설은 둘이었습니다. 하나, 과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위험을 정확히 인식할 것이다. 둘,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가치에 맞춰 증거를 해석할 것이다.
결과는 두 번째였습니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요. 과학 소양과 수리 능력이 가장 높은 집단에서 기후변화를 둘러싼 문화적 양극화가 가장 컸습니다.
잘 아는 사람일수록 의견이 좁혀진 게 아니라 더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지식이 많다는 건 판단을 잘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자기 입장에 맞는 근거를 잘 찾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통계를 읽을 줄 알면 원하는 통계를 골라낼 줄도 압니다. 논문을 읽을 줄 알면 반대 논문도 찾아낼 줄 압니다.
핵심은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이 사람들이 마주한 질문은 “이게 사실인가”가 아니었습니다. “이걸 인정하면 나는 어느 편이 되는가”였습니다.
낯선 일이 아닙니다. 명절 밥상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자기가 어느 쪽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있을 뿐이죠.
그러니까 기후 회의론은 무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지는 표면이고, 진짜 구조는 소속입니다.
그 편 가르기는 저절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구 평균기온에 언제부터 정치적 색깔이 붙었을까요.
1982년, 한 기업의 내부 문서가 작성됩니다. 제목은 「이산화탄소 온실효과」, 작성처는 엑손의 연구개발 부서였습니다.
2023년 1월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이 이걸 정면으로 검증했습니다. 하버드와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진이 1977년부터 2003년까지 엑손 과학자들이 남긴 모든 온난화 예측을 모아 실측과 대조했습니다. 기업의 기후 예측을 체계적으로 평가한 첫 연구입니다.
고유한 예측 12개 가운데 10개가 이후 실제로 일어난 온난화와 맞아떨어졌습니다. 10년마다 0.20도씩(±0.04도) 더워진다는 예측이었고, 같은 시기 학계와 정부 기관의 모델과 대등하거나 더 정확한 수준이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온난화가 언제쯤 관측으로 확인될지도 맞혔습니다.
논문의 결론 문장은 이렇습니다. 그 모든 지점에서 회사의 공개 발언은 자사의 과학 데이터와 배치됐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짚고 갈 게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악당 찾기로 만들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나빴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법이 왜 그렇게 잘 먹혔는가입니다.
그 방법에는 앞선 사례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담배 산업이 쓰던 전략입니다. 흡연이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니까요. 대신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아직 과학자들 사이에도 논쟁이 있다.”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대중은 굳이 반대 진영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을 미루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판단이 미뤄지는 동안 규제는 오지 않습니다.
그럼 폭로하면 돌아올까요
한동안 학계에서 유행한 개념이 있습니다. 역효과, backfire effect. 틀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사실을 들이대면 오히려 그 믿음이 더 단단해진다는 주장입니다. 저도 이 개념을 여러 번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우드와 포터라는 두 연구자가 실험 다섯 건, 참가자 1만 100명, 정치 쟁점 52개를 대상으로 이 효과를 재현하려 했습니다. 거의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실 정정을 받은 사람들은 사실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좋은 소식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더 곤란한 소식입니다.
사람들은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난 30년간 해온 일 — 그래프를 보여주고, 팩트체크를 하고, 보고서를 내는 일 — 은 효과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우리가 원한 효과를 내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을 인정시키는 데는 성공했고, 행동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30년 동안 첫 번째 칸만 계속 채웠습니다.
텍사스에서 벌어진 일
그럼 행동은 무엇이 바꿀까요.
텍사스는 미국에서 석유와 가스의 정체성이 가장 강한 주입니다. 동시에 미국 풍력 발전 1위 주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 자료를 보면,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텍사스 전력망에서 풍력과 태양광이 전력 수요의 36%를 충당했습니다. 태양광이 45테라와트시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 늘었고, 풍력은 87테라와트시였습니다.
여론 수치가 흥미롭습니다. 예일대 기후소통 프로그램의 2025년 기후 여론 지도에서, 텍사스 주민의 53%가 자기 지역에 풍력발전소를 짓는 데 찬성합니다. 태양광도 53%입니다. 그런데 온난화가 주로 인간 때문이라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52%입니다.
두 문항은 별개라 같은 사람인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텍사스의 재생에너지 지지는 기후 신념의 크기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발전소를 세운 건 신념이 아니라 땅 임대료와 지역 세수와 전기값이었습니다.
믿음이 행동을 끌고 간 게 아닙니다. 손익이 끌고 갔습니다.
믿음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두 곳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텍사스 — 원인에 동의하는 사람이 절반 남짓입니다. 그런데 미국 풍력 1위입니다. 한국 — 심각성 인식이 93.7%입니다. 그런데 우선순위는 2위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순서를 이렇게 놓았습니다. 믿게 만든다 → 그러면 지지한다 → 그러면 바뀐다. 그런데 텍사스는 첫 칸을 건너뛰고 세 번째 칸에 갔고, 한국은 첫 칸을 만점으로 채우고 세 번째 칸에 못 갔습니다.
그럼 무엇이 빠졌을까요
연구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셋입니다.
첫째, 단어입니다. “기후위기”라는 말 자체가 이미 소속을 가르는 표식이 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를 다른 단어로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자립, 무역수지, 전기요금, 생산 안정성, 자녀 세대의 자산 가치. 목적지는 같은데 출발점이 다릅니다. 출발점이 다르면 정체성 방어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둘째, 말하는 사람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립니다. 환경단체가 말하면 튕겨 나가고, 같은 작목반 형님이 말하면 들어옵니다. 내 집단 안의 사람이 말할 때는 “이걸 받아들이면 나는 어느 편이 되는가”라는 질문이 아예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대화의 형태입니다. 2016년 『사이언스』에 실린 실험이 있습니다. 브록먼과 칼라 연구팀이 호별 방문 대화를 무작위 배정으로 검증했더니, 10분 남짓한 대화 한 번으로 태도 변화가 만들어졌고 그 변화가 3개월 유지됐습니다. 반대 논리를 들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경험을 먼저 물었고, 판단하지 않고 들었습니다.
다만 이 실험의 주제는 기후가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었습니다. 그대로 옮겨 적용할 수는 없고, 기후 영역의 검증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이 글의 결론은 “안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까”가 아닙니다.
설득이 목표였던 것 자체가 잘못된 문제 설정이었습니다.
93.7%가 믿는 나라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남은 6.3%를 설득하는 데 쓸 에너지는 다른 데 써야 합니다. 그 다른 데가 손익 구조입니다.
폭염 대응 시설을 넣은 과수원과 넣지 않은 과수원의 3년 누적 수익 차이가 얼마인지. 휴경지에 영농형 태양광을 올렸을 때 연 임대 수익이 얼마인지. 고수온 대응 설비의 회수 기간이 몇 년인지.
이 숫자들이 나오면, 온난화를 믿지 않는 농가도 시설을 넣습니다. 텍사스에서 일어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아니라 30년 단위로 보면 믿음은 결국 따라옵니다. 행동이 먼저 바뀐 곳에서 나중에 바뀝니다. 순서가 반대였던 겁니다.
청구서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처음의 숫자로 돌아가겠습니다.
18.74도. 71일. 1,430억 원.
이 숫자들은 논쟁의 결과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누가 맞았는지 정리되기 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다음 청구서는 이미 발행 중입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믿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믿지 않아도 하게 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