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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잔잔해서 불안합니다

쓰나미 직전에는 물이 유난히 멀리 빠집니다

계기판은 조용합니다. 2026/27년 세계 곡물 생산은 29억 8,300만 톤으로 사상 두 번째고, 재고율은 32.0%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가격도 급하지 않습니다. 어느 지표를 집어 들어도 위기라고 부를 근거가 마땅치 않습니다.

그런데 불안이 가시지 않습니다. 바다가 유난히 멀리 물러난 해변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눈앞은 평소보다 오히려 잔잔한데, 그 잔잔함 자체가 신호인 경우가 있지요.

확인된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은 짐작입니다. 그래서 기관의 자료가 아니라 여기에 적습니다.

신호 셋이 가리키는 시점이 제각각입니다

지금 곡물 시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신호는 셋입니다.

옥수수는 지나간 쪽입니다. 중국의 수입이 한 시장연도 만에 2,333만 톤에서 182만 톤으로 줄었습니다. 세계 수입 지형이 통째로 바뀔 만한 변화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물량이 헐거워진 쪽으로 왔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그것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밀은 지금 벌어지는 쪽입니다. 미국과 호주의 작황이 좋지 않고, 그것이 이미 값에 들어와 있습니다. 총량 지표가 잔잔한 와중에도 곡물만, 그중에서도 밀만 따로 오르고 있습니다.

비료와 에너지는 아직 오지 않은 쪽입니다. 호르무즈가 2월 이후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다 7월에 합의가 깨졌고, 그 여파로 투입재 값이 올랐습니다. 투입재 비용은 곡물과 축산을 거쳐 가공식품과 외식으로 갑니다. 작기와 재고 회전, 계약 갱신을 차례로 통과해야 하니 시차가 깁니다. 지금은 첫 단이 끝나 가는 자리입니다.

지나간 것과 지금인 것과 오지 않은 것이 한 화면에 섞여 있으니 계기판이 평온해 보입니다. 평균은 언제나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2022년과는 다른 종류의 사건입니다

정작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2022년의 흑해는 길이 막힌 사건이었습니다. 배가 못 나갔을 뿐 항만과 사일로, 하역설비는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협상으로 길이 열리자 물량이 돌아왔습니다. 회복이 빨랐다기보다, 애초에 부술 것을 부수지 않았던 것입니다.

2026년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의 곡물 수출설비를 때리고 있습니다. 부순 것은 다시 지어야 하고, 항만은 협상으로 복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내일 끝난다 해도 수출이 곧바로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흑해 곡물 출하가 전년보다 40% 넘게 줄어든 상태인데, 육상 우회로를 다 합쳐도 흑해 항만 처리능력의 3분의 1에 그칩니다. 경로는 대체됐고 규모는 대체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겹 더 들어가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팔지 못하면 심지 않습니다. 몇 해 동안 반출이 막히면 창고가 차고, 값이 무너지고, 다음 작기의 파종 면적이 줄어듭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재고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물량이지만, 다음에 보게 될 것은 애초에 심지 않은 면적일 겁니다. 재고는 몇 달이면 되돌아오고 항만은 몇 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무너진 농업 기반은 그보다 오래갑니다.

이 글에서 제가 확신을 갖고 하는 이야기는 이 한 대목뿐입니다.

우리 부엌에 닿는 지점은 둘인데, 성질이 다릅니다

밀은 값으로 옵니다. 한국이 사오는 밀은 미국이 51.1%, 호주가 33.5%입니다. 둘을 더하면 84.6%입니다. 흑해에서는 사료용을 조금 살 뿐입니다. 그러니 흑해가 막혀도 우리 배가 못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세계 밀값이 오르고, 우리는 그 값에 삽니다. 게다가 하필 그 84.6%를 대주는 두 나라의 작황이 지금 나쁩니다. 값으로 오는 경로와 물량으로 오는 경로가 동시에 나빠진 셈입니다.

옥수수는 물건으로 옵니다. 이쪽이 훨씬 까다롭습니다.

한국은 옥수수를 1,144만 톤 수입하는데, 이 가운데 925만 톤이 사료·잔여용이고 220만 톤이 식용·전분당용입니다. 사료용은 미국이든 브라질이든 값과 운임을 보고 갈아타면 됩니다. 문제는 나머지 220만 톤입니다. 식용은 non-GM 원료만 써야 하고, 2023년 기준 전분당용 옥수수 수입의 81%가 우크라이나·러시아·루마니아·불가리아·세르비아에서 왔습니다.

왜 하필 그쪽이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미국은 옥수수 재배면적의 94%가 유전자변형 품종이고, 브라질은 96%입니다. 남는 6%와 4%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밭에서부터 사일로와 선적까지 따로 관리해서 뽑아내야 하는 물량입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GM 옥수수 재배를 아예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라 단위로 non-GM이니 분별해서 관리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쌌습니다. 우리가 거기서 산 것은 취향이 아니라 산술의 결과였습니다.

이것은 비중의 문제가 아니라 종류의 문제입니다. 미국이나 브라질에서 non-GM 옥수수를 가져오려면 값만 치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약과 검사와 전용 물류를 새로 짜야 합니다. 사는 일이 아니라 짓는 일입니다.

국무회의에서 오간 한 문장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당류와 식용유지류의 GMO 표시 의무화를 2027년 말에서 2026년 말로 앞당기라는 지시가 나왔습니다. 8월 5일에는 식약처가 그 내용으로 고시 재개정을 행정예고했습니다. 비의도적 혼입 허용치를 지금의 3%에서 EU 수준인 0.9%로 낮추라는 주문도 함께 있었습니다.

표시제 자체에 큰 이견은 없습니다. GMO로 만들었으면 그렇게 적는 것이 맞고, 안전성이 아니라 알 권리의 문제라는 말도 맞습니다. 다만 굳이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이었을까라는 생각은 합니다.

제가 오래 들여다본 것은 그날 나온 다른 문장입니다. 식약처장은 소비자가 Non-GMO 제품을 찾기 시작하면 업계가 원료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회의장에서는 업계를 봐주는 말처럼 들렸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문장의 뒷면에는 지금 서로의 표적이 되고 있는 흑해의 하역설비가 있습니다.

두 개의 시간표가 겹칩니다. 하나는 국내 제도가 non-GM 원료 수요를 끌어올리는 시간표고, 다른 하나는 그 원료가 나오던 항만이 좁아지는 시간표입니다. 혼입 허용치가 3%에서 0.9%로 내려가면 그동안 통과하던 물량도 통과하지 못합니다. 요구는 올라가고 공급선은 얇아지는데, 남은 기간은 넉 달입니다.

제도가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맞추기 어려워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개 제도가 미뤄지고, 미뤄지는 과정에서 처음의 취지도 함께 흐려집니다.

창고가 아니라 돈이면 된다는 말

요즘은 이런 뉴스가 뜨면 다들 어디가 호재인지부터 봅니다.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수입이 끊기는 일은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싸질 뿐입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비축창고가 아니라 지불 능력이라는 말도 절반은 맞습니다.

틀리는 지점이 셋 있습니다.

첫째, 그 돈을 누가 내느냐입니다. 식료품과 비주류음료에 쓰는 돈의 비중이 소득 1분위 가구는 22.5%, 5분위는 13.5%입니다. 같은 폭으로 값이 올라도 두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둘째, 돈의 값도 흔들립니다. 3월 말 원·달러 환율은 17년 만의 최고였습니다. 지불 능력으로 버티겠다는 전략은 통화가 안정적일 때의 전략입니다.

셋째, 이것이 제일 중요한데, 값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오늘 존재하는 물량뿐입니다. 사료용 옥수수는 돈이면 됩니다. 그런데 non-GM 식용 옥수수는 지금 세계에 그 형태로 존재하는 양이 정해져 있고, 표시제는 그 정해진 양을 더 많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갑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파종 면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 않은 것은 어떤 값을 불러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언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짐작뿐입니다. 이 글에 적은 것 중 절반은 몇 달 뒤에 과민반응이었던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지켜보면 되는지는 압니다. 총량과 재고율은 지금 볼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볼 것은 흑해 항만의 월별 반출량,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다음 파종 면적, 그리고 12월 말로 예고된 고시가 실제로 그날 시행되는지 여부입니다. 앞의 둘은 세계의 시간표고 마지막 하나는 우리 시간표인데, 셋이 같은 계절에 걸려 있습니다.

물이 멀리 빠진 자리를 오래 보고 있으면 결국 둘 중 하나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늦게 알아차리거나.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사단법인 식량과기후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