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아이스베르크, 양상추 농가는 어떨까. 이게 궁금했습니다.
양상추는 채소 가운데서도 저장성이 떨어집니다. 수확하면 며칠 안에 팔아야 하고, 저장해 두었다가 값이 오를 때 출하하는 식으로 물량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날씨가 공급량을 바꾸면 그 변화가 곧바로 가격에 반영됩니다. 이 가격 변동을 독일 산지는 어떤 구조로 흡수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독일 양상추 값도 한국처럼 흔들립니다
독일 연방통계청의 농가 판매가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스베르크 가격은 2025년 6월에 1년 전보다 60% 떨어졌고, 2026년 7월에는 1년 전보다 61% 올랐습니다.
저장으로 물량을 조절할 수 없는 채소라면 독일에서도 가격 변동은 피할 수 없습니다. 차이는 그 변동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떠안느냐에 있습니다.
매주 나눠 심어 가격 위험을 1년 매출 안에서 평균합니다
독일 아이스베르크 출하량의 절반 남짓은 생산자조직을 거칩니다. 2021년 기준으로 물량의 55%, 산지 매출의 52%가 공식 인정 생산자조직(EO)을 통해 나갔고, 나머지는 대형 농가가 소매업체에 직접 넘겼습니다. 생산자조직은 회원 농가의 물량을 모아 대형 소매업체에 공급합니다. 이때 정해진 물량을 맞춰 납품할 의무를 집니다.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거래처 목록에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농가는 3월 초부터 여름까지 한 해 열여섯 차례 안팎으로 나눠 정식합니다. 출하는 5월부터 10월 말까지 매주 이어집니다.
이렇게 작기를 쪼개면 한 번의 가격에 한 해 농사를 걸지 않게 됩니다. 값이 좋은 주와 나쁜 주가 1년 매출 안에서 섞이고, 특정 시기의 폭락이 연간 수익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납품 물량을 지키려고 처음부터 더 심습니다
납품 의무를 지키려면 날씨가 나쁜 해에도 계약 물량을 대야 합니다. 그래서 계획 출하량보다 정식 면적을 10~20% 늘려 잡습니다. 일종의 안전 재고를 밭에 두는 셈입니다.
여유를 두는 이유는 손실 폭에 있습니다. 튀넨연구소의 사례 조사에 따르면 아이스베르크는 생산 단계에서 좋은 해에 10~15%, 평년에 25~30%, 나쁜 해에는 35~40%가 상품이 되지 못합니다. 상추류 가운데 재배가 까다로운 편이라 수확률도 낮습니다.
날씨가 좋은 해에는 반대로 물량이 남습니다. 남은 물량이나 산지가격이 맞지 않는 물량은 수확하지 않고 갈아엎습니다. 연구진은 이 과잉 물량을 납품 의무를 지키는 체계에 내재된 비용으로 봅니다. 수확과 포장에는 인력이 많이 들어가므로, 가격이 그 비용에 못 미치면 밭에서 정리하는 편이 손실이 적습니다.
농지가 넓어서 가능한 방식이겠죠. 한국처럼 농지가 작고 비싸면 갈아엎을 몫까지 미리 심는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떠난 농가의 농지는 남은 농가가 이어받습니다
이 구조로도 버티지 못하는 농가는 그만둡니다.
독일에서 아이스베르크를 재배하는 농가는 2015년 825곳에서 2025년 554곳으로 줄었습니다. 10년 사이 셋 중 하나가 재배를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재배면적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3,700헥타르에서 3,852헥타르로 오히려 조금 늘었습니다. 떠난 농가의 농지를 남은 농가가 이어받아 규모를 키웠다는 뜻입니다.
가격은 비공개 협상으로 정해집니다
납품 가격은 생산자조직과 소매업체가 협상해서 정합니다. 시장가격 정보를 참고하지만 최종 가격은 협상으로 정해지고, 결과도 공개되지 않습니다.
협상 상대는 매우 집중돼 있습니다. 독일 연방카르텔청에 따르면 에데카, 레베, 슈바르츠 그룹(리들·카우프란트), 알디 네 곳이 식품 소매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생산자조직이 물량을 모아도 판로가 사실상 네 곳뿐이니 협상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겠죠.
독일 채소 농가의 소득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아이스베르크 농가만 따로 집계한 경영 통계는 찾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공식 통계는 연방농식품부의 채소 전업 시험농가 장부입니다. 2021/22 회계연도 평균을 보면 한 경영체에 9명이 일하고, 그 가운데 가족은 1.7명입니다. 고용 인건비를 치르고 경영체에 남는 이익은 약 16만 유로입니다. 이익과 인건비를 합쳐 일하는 사람 수로 나눈 1인당 소득은 4만 1천 유로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농업인들이 독일 농가를 방문하고 가장 놀라는 대목이 이것이었습니다. 독일 농가의 수입이 생각보다 너무 작다는 겁니다.
저도 이 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가격은 크게 흔들리고, 협상력은 약하고, 남는 이익은 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독일 농업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한국과 독일은 서로 다른 길을 골랐습니다
한국은 농가 수를 유지하면서 소득을 보전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소규모 농가와 고령 농가도 영농을 이어 갈 수 있는 체계를 갖췄습니다. 다만 농가가 많은 만큼 평균 소득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은 농가 수를 줄이고 남은 농가의 규모를 키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규모가 크고 경영 성과가 좋은 농가는 이익을 남깁니다. 같은 채소 시험농가에서도 이익 상위 3분의 1은 약 34만 유로를 남겼지만, 하위 3분의 1은 3만 유로에 못 미쳤습니다. 소득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작습니다. 직불금과 보조금은 1헥타르당 472유로로 같은 면적에서 나오는 이익의 6%가 안 됩니다. 정책이 바뀌어도 경영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대신 손실은 농가가 스스로 감당합니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 선택한 결과입니다.
다음 세대에도 이 체계를 이어 갈 수 있을까요
질문은 이거죠.
농업인은 빠르게 고령화하고, 기후 변화로 채소 가격의 변동 폭은 점점 커집니다. 지금의 체계를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 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만들어 갈 것인가.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