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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밭에서 돌을 골라낸 섬이, 이제 돌을 갈아 밭에 뿌립니다

암석풍화촉진(ERW)이라는 탄소 제거 기술, 그리고 제주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

제주 밭 가장자리에는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제주 말로 「머들」이라고 합니다. 밭을 갈 때마다 땅에서 올라오는 돌을 골라내 한쪽에 쌓아 둔 것입니다. 돌을 골라내고 또 골라내서 밭담을 쌓은 섬이 제주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돌을 다시 밭에 넣겠다는 회사의 대표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곱게 갈아서 뿌린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직접 이 일을 하는 기업은 머들어스입니다.

처음에는 말장난처럼 들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꽤 진지한 기술이었습니다.

돌은 원래 탄소를 먹습니다

빗물은 약간 산성입니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가 녹아 들어가 약한 탄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빗물이 현무암 같은 돌에 닿으면 돌이 아주 조금씩 녹습니다. 칼슘과 마그네슘이 빠져나오고, 그때 물에 녹아 있던 이산화탄소가 중탄산 이온이 되어 물에 붙잡힙니다. 이 물은 지하수와 하천을 거쳐 바다로 갑니다. 바다에 들어간 탄소는 수만 년을 머뭅니다.

이것이 풍화입니다. 지구는 이 느린 반응으로 수십만 년에 걸쳐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조절해 왔습니다.

다만 너무 느립니다. 사람이 기다릴 수 있는 속도가 아닙니다. 그러니 돌을 가루로 만들어 빗물이 닿는 면적을 크게 늘리고, 그 가루를 따뜻하고 습하고 뿌리와 미생물이 많은 밭에 뿌립니다. 바위산에서 수천 년 걸릴 일을 밭에서 몇 년 안에 끝내 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암석풍화촉진입니다. 영어로는 Enhanced Rock Weathering, 줄여서 ERW라고 부릅니다.

농사짓는 쪽에서는 덤도 있습니다. 녹아 나온 칼슘과 마그네슘이 산성으로 기운 흙을 되돌려 놓으니 석회를 덜 뿌려도 되고, 칼륨이나 규소 같은 성분도 같이 들어갑니다.

아무리 줄여도 남는 몫이 있습니다

탄소중립 이야기는 대개 덜 태우고 덜 쓰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줄여도 남는 배출이 있고, 농업이 특히 그렇습니다. 논에서 나오는 메탄, 비료에서 나오는 아산화질소, 소의 트림은 0으로 만들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남은 만큼은 공기에서 다시 빼내야 셈이 맞습니다. 이걸 이산화탄소 제거, 줄여서 CDR이라고 합니다. 공기에서 직접 빨아들이는 기계(DAC)도 있고, 바이오매스를 태울 때 나온 탄소를 땅속에 묻는 방법, 바이오차, 바다를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암석풍화촉진도 그중 하나입니다.

농업이 탄소를 빼내는 쪽에 설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암석풍화촉진은 밭을 비울 필요 없이 있는 농기계로 뿌리면 되고, 흙에도 좋을 수 있습니다. 제가 눈여겨본 것도 그 대목입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이 기술은 아직 시험대 위에 있습니다.

기대는 큽니다. 영국 셰필드대 연구진은 2020년 『네이처』 논문에서 중국·인도·미국·브라질 같은 나라의 농경지에 돌가루를 뿌리면, 세계가 목표로 하는 한 해 0.5~2기가톤의 탄소 제거에 크게 보탤 수 있다고 봤습니다. 비용은 이산화탄소 1톤에 80~180달러로 잡았습니다. 미국 일리노이 옥수수밭에서는 4년 동안 해마다 ha당 현무암 50톤을 뿌렸더니, 보수적으로 잡아도 ha당 이산화탄소 10.5톤을 제거한 것으로 계산됐고 옥수수와 콩 수확량은 12~16%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 10.5톤부터가 탄소를 직접 잰 값이 아닙니다. 흙에서 칼슘과 마그네슘이 얼마나 빠져나갔는지를 보고 거꾸로 계산한 값입니다. 탄소가 물에 녹아 흘러가 버리니 그렇게 셀 수밖에 없습니다. 하천과 바다로 간 뒤의 일은 대부분 모델로 짐작합니다. 녹은 성분이 흙에 다시 붙잡히거나 하천을 지나다 탄소가 도로 빠져나가면 셈이 어긋납니다.

걱정거리도 있습니다. 돌가루에 섞인 중금속이 조금씩 흙에 쌓일 수 있습니다. 현무암은 감람암 같은 돌보다 그런 성분이 적은 편이지만 캐는 곳마다 다릅니다. 돌을 캐고 갈고 실어 나르는 데 쓴 에너지도 제거한 양에서 빼야 합니다.

그러니까 「돌가루를 뿌리면 탄소가 줄어든다」는 원리는 맞습니다. 「이 밭에서 올해 몇 톤을 줄였다」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는 확신보다 규칙을 먼저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오래 들여다본 건 외국이 이 불확실한 기술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효과가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재는 방법과 사 줄 사람부터 만듭니다.

브라질은 가장 일찍 움직였습니다. 2013년 법을 고쳐 암석 가루를 「토양 재광물화제」라는 정식 농자재로 인정했고, 품질 기준도 따로 정했습니다. 돌가루가 비료와 같은 칸에 들어간 겁니다. 효과를 다 확인하기 전에 쓸 수 있는 자리부터 만들어 둔 셈입니다.

미국에서는 사 주는 쪽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Stripe 같은 기업들이 모인 구매 연합 Frontier는 2024년 말, 브라질에서 사업하는 Terradot와 2029년까지 이산화탄소 9만 톤을 2,700만 달러에 사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2025년 봄에는 미국 기업 Eion에서 7만 8,707톤을 3,300만 달러에 사기로 했습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제거량을 미리 사 준 겁니다. 에너지부도 정부가 탄소 제거를 직접 사 보는 시범사업에 암석풍화·광물화 기업 다섯 곳을 후보로 올렸습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 주면서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상도 걸렸습니다. 2025년 4월 XPRIZE 탄소 제거 부문 대상, 상금 5,000만 달러는 인도 소농의 논에 현무암 가루를 뿌리는 Mati Carbon이 받았습니다.

EU는 인증 제도부터 깔았습니다. 2024년 말 탄소 제거 인증을 법으로 만들고, 기술마다 셈하는 방법을 차례로 정하고 있습니다. 2026년 2월 처음 확정된 것은 공기 직접 포집, 바이오에너지 탄소 포집, 바이오차 세 가지였고 암석풍화는 아직 검토 중입니다. 재는 방법이 정해지지 않으면 인증도 기다리게 하는 겁니다. 영국은 2021년 국가 연구비 470만 파운드로 셰필드대가 이끄는 암석풍화 대규모 실증을 시작했습니다.

국제 규칙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IPCC는 나라마다 온실가스 통계를 낼 때 탄소 제거량을 어떻게 셀지 정하는 보고서를 2027년까지 내기로 했고, 올해 4월 쓰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전문가 분야에 암석풍화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 지침이 나와야 밭에 뿌린 돌가루를 나라의 감축 실적으로 셀 수 있게 됩니다.

한국도 출발은 했습니다. 올해 5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바이오차와 암석풍화를 핵심으로 하는 토양 기반 탄소 제거 기술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다만 현무암 가루가 비료 제도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탄소 제거 실적으로 셀 근거가 있는지는 저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은 숙제로 적어 둡니다.

제주에서 이 일을 시작한 회사

머들어스는 2026년 제주에서 문을 연 스타트업입니다. 대표는 제주의 청년 여성입니다. 회사 이름은 앞에서 말한 그 돌무더기, 머들에서 왔습니다.

지금은 제주 신촌리의 한 유기농장에서 제주대·경희대 연구진과 함께 현무암 가루를 밭에 뿌려 보고 있습니다. 회사는 국내에서 처음 하는 암석풍화 현장 실증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증 농장은 저탄소 농산물 인증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제주에서 하는 건 그럴듯해 보입니다. 섬 전체가 현무암이니 원료가 밭 바로 옆에 있고, 멀리서 돌을 실어 올 필요가 없으니 운송에서 나오는 배출도 적을 겁니다. 물이 잘 빠지는 화산토라 녹은 성분이 빨리 지하수로 내려가는 것도 이 기술에는 좋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그 물이 어디로 얼마나 가는지 재기는 더 까다로울 겁니다. 둘 다 아직 제 짐작입니다.

앞으로 제가 지켜볼 것은 신촌리 밭에서 붙잡힌 탄소를 누가 어떤 방법으로 재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농가에 무엇으로 돌아가는지입니다. 대표에게서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산물이 아직 팔 곳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기술이 맞아도 그 값을 치를 사람이 없으면 밭에서 멈춥니다.

수백 년 동안 밭에서 골라낸 돌을 이제 갈아서 다시 밭에 넣습니다. 그 돌이 탄소를 얼마나 붙잡는지는 몇 년 뒤 신촌리 밭이 보여 줄 겁니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사단법인 식량과기후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