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물을 대는 계약은 5%뿐이다
한전 요금표에서 농사용 전력은 ‘갑’과 ‘을’ 두 종으로 나뉜다. 농사용(갑)은 벼농사용 양수·배수 펌프와 수문 조작에 적용되는 계약이다. 농사용(을)은 그 밖의 모든 농사 용도 — 시설원예 난방·냉방, 축사 환기, 저온저장고, 건조시설, 육상 양식장 — 에 적용된다.
9개 도의 66개월 판매량을 합산하면 농사용(갑)의 비중은 5.3%다. 농사용(을) 저압이 53.1%, 농사용(을) 고압이 41.6%로 나머지 94.7%를 채운다.
관개용을 먼저 떠올리는 통념과 달리, 실제 소비의 대부분은 작물과 가축이 놓인 공간의 온도를 관리하거나 물을 순환시키는 시설에서 일어난다. 다만 이 원자료는 계약종별로만 구분돼 있다. ‘을’ 종 안에서 시설원예와 축산과 양식이 각각 얼마씩 차지하는지는 이 데이터만으로 나눌 수 없다.
계약 건수와 사용량이 어긋난다
계약종별 비중은 연도별로 나눠 봐도 큰 틀에서 유지된다. 판매량 기준으로 농사용(갑)은 매년 3~6%대, 농사용(을) 고압은 40~43%대, 농사용(을) 저압은 51~54%대에서 움직인다.
| 연도 | 농사용(갑) | 농사용(을) 고압 | 농사용(을) 저압 | 합계 |
|---|---|---|---|---|
| 2018 | 6.31% | 42.07% | 51.62% | 100% |
| 2019 | 5.84% | 42.01% | 52.15% | 100% |
| 2020 | 4.55% | 42.30% | 53.15% | 100% |
| 2021 | 5.33% | 40.53% | 54.14% | 100% |
| 2022 | 5.58% | 40.23% | 54.19% | 100% |
| 2023 상반기 | 3.40% | 43.28% | 53.32% | 100% |
계약 건수(고객 호수) 기준으로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농사용(을) 저압 계약이 전체의 93% 안팎으로 압도적 다수이고, 농사용(을) 고압 계약은 0.6%에 못 미친다.
| 연도 | 농사용(갑) | 농사용(을) 고압 | 농사용(을) 저압 | 합계 |
|---|---|---|---|---|
| 2018 | 6.55% | 0.57% | 92.88% | 100% |
| 2019 | 6.39% | 0.57% | 93.05% | 100% |
| 2020 | 6.22% | 0.56% | 93.21% | 100% |
| 2021 | 6.04% | 0.56% | 93.40% | 100% |
| 2022 | 5.92% | 0.55% | 93.53% | 100% |
| 2023 상반기 | 5.75% | 0.57% | 93.68% | 100% |
두 표를 겹쳐 보면 격차가 드러난다. 농사용(을) 고압 계약은 전체 계약 건수의 0.55~0.57%에 불과하지만 같은 기간 판매량의 40~43%를 쓴다. 반대로 계약의 93% 이상을 차지하는 농사용(을) 저압은 판매량으로는 51~54%에 그친다. 계약 한 건당 쓰는 전력량이 두 계약종 사이에서 크게 벌어져 있다는 뜻이다.
완도군이 서귀포시 다음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이유
계약종만큼 지역 분포도 통념과 다르다. 9개 도 가운데 전라남도가 20.6%로 가장 크고, 경기도 14.4%, 경상남도 13.5%, 충청남도 12.7%, 경상북도 12.3%, 전라북도 9.6%, 제주 7.9%, 충청북도 4.9%, 강원도 4.0% 순이다.
사용량을 시군구 단위로 내려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9개 도 전체 시군구 중 판매량 1위는 제주 서귀포시이고, 2위는 전라남도 완도군이다. 완도군은 전남에서 벼농사 재배면적이 가장 큰 지역이 아니다. 국내 대표적인 김·전복 양식 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 순위 | 시군구 | 판매량 | 9개 도 대비 | 알려진 지역 특성 |
|---|---|---|---|---|
| 1 | 서귀포시(제주) | 55.4억kWh | 5.27% | 감귤 하우스, 육상 양식장 밀집 |
| 2 | 완도군(전남) | 45.6억kWh | 4.34% | 김·전복 등 양식 산지 |
| 3 | 제주시(제주) | 28.1억kWh | 2.67% | 감귤·월동채소, 육상 양식장 |
| 4 | 해남군(전남) | 21.9억kWh | 2.09% | 배추 등 밭작물 주산지 |
| 5 | 진주시(경남) | 21.1억kWh | 2.01% | 시설원예·축산 밀집 |
이 순위는 도별 비중을 9개 도로 넓혀도 그대로 유지된다. 전남의 비중이 28%에서 21%로 내려가도 완도군은 여전히 2위다.
다만 이 원자료는 업종별 통계가 아니어서 완도군·서귀포시의 순위가 양식업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전 농사용전력 요금은 양식장을 포함한 수산업 시설에도 적용되고, 두 지역이 벼농사보다 양식업으로 더 알려져 있다. 두 사실을 함께 놓고 보면, 이 지역 농사용 전력의 상당 부분이 육상 양식장 펌프·산소공급기와 냉동·저장시설에서 쓰일 가능성이 있다. 여기까지가 이 데이터로 말할 수 있는 범위다.
겨울에 몰리는 농사용 전기
월별로 보면 사용량은 겨울에 몰린다. 2월이 10.0%로 가장 높고 1월이 10.0%로 그 뒤를 잇는다. 두 달이 연간의 20.0%다. 가장 낮은 달은 5월로 6.7%다.
이 월별 비중은 2018~2022년 다섯 해만 써서 계산했다. 2023년은 1~6월까지만 있어서 66개월 전체를 그대로 평균하면 1~6월이 여섯 번, 7~12월이 다섯 번 들어가 상반기가 부풀려진다.
이 원자료만으로는 계절 변동의 원인을 직접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을’ 종이 사용량의 94.7%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겨울철 정점은 시설원예 난방 수요와 맞물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영농 작업이 가장 바쁜 5월이 오히려 바닥이라는 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8월에 나타나는 2차 정점은 냉방·환기 수요로 보인다.
쓰는 농가도, 단가도 함께 늘었다
계약 건수(월평균)는 2018년 약 174만 호에서 2023년 상반기 약 204만 호로 16.9% 늘었다. 같은 기간 요금은 계약종별로 다르게, 그리고 훨씬 크게 움직였다.
농사용(을) 저압의 평균단가는 2018년 51.2원/kWh에서 2021년 49.3원/kWh까지 낮아졌다가, 2022년 60.4원, 2023년 상반기 77.1원(2018년 대비 +50.8%)으로 올랐다. 농사용(갑)은 2018년 25.0원에서 2023년 상반기 54.2원으로 2.17배가 됐다.
단가는 실제 고시 요금표가 아니라 판매금액을 판매량으로 나눈 값이다. 사용량 구간별 요금 차이가 함께 섞여 있고, 2023년은 1~6월 평균이다. 이렇게 계산한 9개 도 전체 평균단가는 「한국전력통계」의 전국 공표 단가와 2018~2022년 내내 0.06원 이내로 일치한다.
사용량과 단가가 함께 움직인 결과, 판매금액 증가는 사용량 증가보다 훨씬 빠르다. 2021년 한 해 판매금액은 9,123억 원이었는데, 2023년은 상반기 6개월치만으로 7,440억 원에 이른다. 사용량 자체는 2018년 178.4억kWh에서 2022년 206.8억kWh로 15.9% 늘었다. 판매금액이 그보다 크게 늘어난 것은 단가 상승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시사점
농사용 전기는 논에 물을 대는 데 쓰인다는 통념과 달리, 9개 도 원자료에서 확인되는 실제 소비의 94.7%는 시설원예·축산·저온저장·양식에 적용되는 ‘을’ 종에서 일어난다. 지역 단위로 보면 이 구조가 더 분명해져서, 벼농사 지대가 아니라 완도군 같은 양식 밀집지가 상위권에 오른다.
이 데이터가 바꾸는 판단은 하나다. 농사용 전력 정책이나 요금 설계를 관개 중심으로만 그리면 실제 소비의 대부분을 놓친다. 시설·축산·양식이 이미 사용량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이 부문의 단가가 2021년 이후 더 큰 폭으로 올랐다. 에너지 비용 지원의 설계 자체를 다루는 논의는 「면세유와 농사용 전기, 어디로 가야 할까」에 정리해 두었다.
덧붙여, 이 원자료에는 한전이 공표 통계에서 내지 않는 계약종 갑·을 구분이 들어 있다. 같은 구분을 전국·전 기간으로 정기 공표하면, 이 글이 9개 도로 좁혀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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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과기후는 농사용 전력의 계약종별·업종별 실측 통계를 전국 단위로 정기 공표하도록 요청하는 정책 제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설원예·축사·양식장에서 실제로 확인되는 요금 부담을 보내주시면 다음 판본에 반영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자료의 한계. 이 글의 수치는 원자료 전체가 아닙니다. 대상은 9개 도(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전수이며, 농사용 전력을 보는 자료라서 농어촌이 사실상 없는 특별시·광역시 8곳은 처음부터 제외했습니다. 「한국전력통계」의 전국 농사용 판매량과 대조하면 2018~2022년 매년 96.4~96.5%에 해당합니다. 또한 고객 호수 5호 미만으로 마스킹된 1,450행(판매량·판매수입도 함께 비어 있음)은 집계에서 빠졌고, 2023년 하반기 이후 기간은 자료에 없습니다. 월별 비중은 상반기 과대평가를 피하기 위해 2018~2022년 완전 5년만으로 계산했습니다. 원자료는 계약종별로만 구분되므로 ‘을’ 종 안에서 시설원예·축산·양식이 각각 차지하는 몫은 나눌 수 없습니다. 완도군·서귀포시 순위를 양식업과 연결한 서술은 지역 특성과 결합한 추정이며 데이터로 확인한 인과관계가 아닙니다. 평균단가는 고시 요금표가 아니라 판매금액÷판매량으로 계산한 값입니다.
한국전력공사, 「계약종별 소분류 판매실적」 — 2018년 1월~2023년 6월, 경기도·강원도·충청북도·충청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북도·경상남도·제주특별자치도. 계약종별 판매량·판매금액·고객호수의 출처이며, 이 글의 모든 비중·평균단가는 이 원자료를 직접 재집계·계산한 값이다.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통계」(제95호, 2026) — 적용요금별 농사용의 전국 판매전력량·평균단가. 위 9개 도 집계의 커버리지(96.4~96.5%)와 평균단가를 검산하는 데 썼다.
한국전력공사, 「전기공급약관」 — 농사용전력(갑)·(을)의 적용 대상 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