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기본은 농지에 청구서를 보냈습니다.
농지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재생에너지 목표를 채울 수 없고,
농지를 건드릴 거라면 농사를 멈추는 방식이 아니라 농사를 지키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1. 11차 전기본의 산수 — 재생에너지 4배 확대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12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했습니다(산업부, 2025). 2024년부터 2038년까지 15년간의 전력 수급 청사진입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데이터센터·반도체·전기차 보급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납니다. 2024년 557TWh였던 전력소비량은 2038년 735TWh로 32% 증가합니다(산업부, 2025).
둘째, 늘어난 수요를 무탄소 전원으로 메우기로 했습니다. 2038년 발전비중 목표는 원자력 35.2~35.6%, 재생에너지 32.9%(2030년 중간 목표 21.6%)로, 두 무탄소 전원이 균형을 이루는 CFE(무탄소 전력) 체계를 지향합니다. 이 글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재생에너지, 그 중에서도 신규 부지 확보가 가장 긴박한 과제인 태양광입니다.
2023년 약 30GW였던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038년 121.9GW까지 늘어납니다. 약 4배입니다(산업부, 2025). 같은 기간 발전비중도 2024년 9% 수준에서 2038년 29.2%로 올라갑니다.
문제는 이 계획 안에서 풍력의 역할이 작다는 점입니다. 11차 전기본의 2030년 풍력 목표는 18.3GW로, 10차 전기본 대비 오히려 1GW 줄었습니다(산업부, 2025). 해상풍력 인허가 지연과 계통 연계 문제가 누적된 결과입니다.
결국 재생에너지 확충의 짐은 태양광이 집니다. 2030년 태양광은 55.7GW, 2038년에는 77.2GW로 늘어납니다. 내부 검토안에서 최종 확정안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추가된 2.4GW도 모두 태양광 몫이었습니다(법무법인 세종, 2025).
2. 121.9GW로도 부족하다 — 2035 NDC가 꺼낼 다음 카드
11차 전기본 최종 확정(2025년 12월)에 앞서, 같은 해 9월 정부는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시나리오를 공개했습니다(기후에너지환경부, 2025). NDC가 먼저 나오고 전기본이 이를 반영해 확정된 셈입니다. 한국이 UN에 제출해야 할 다음 단계 감축 목표입니다.
NDC 시나리오에 따르면 2018년 대비 48%를 감축하는 가장 보수적인 안에서도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30GW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53% 감축 시 150GW, 시민사회와 IPCC 권고치인 61~65% 감축 시 160GW 이상이 필요합니다(에너지경제일보, 2025; 기후솔루션, 2025).
문제는 지금 속도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누적 용량은 34GW, 연평균 증가 속도는 4~5GW에 불과합니다(에너지경제일보, 2025). 현재 속도를 유지하면 2035년에 약 80~90GW에 도달합니다. NDC 최저 시나리오와도 40GW 이상 차이가 납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2025년 하반기부터 「제6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습니다(산업부, 2025.9). 산업부는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목표를 상향하겠다고 명시했고, 그 수단으로 “산단·영농형·수상·주차장·지자체 공공부지 등 태양광 입지 다각화”를 제시했습니다(ESG경제, 2025).
11차 전기본은 이미 옛 계획이 되었습니다. 2035 NDC와 6차 신기본이 확정되는 2026년 안에 100GW 규모의 태양광을 설치할 부지가 한국 국토에서 확보되어야 합니다.
3. 한국 국토는 그 태양광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는가
이제 토지 산수에 들어갑니다.
태양광 1GW를 지상에 설치하려면 약 1,200~1,500ha가 필요합니다(에너지경제연구원, 2024). 100GW 신규 설치라면 12만~15만 ha가 필요합니다. 서울시 면적(605㎢)의 2~2.5배입니다.
한국 국토는 산지가 약 63%, 농지가 약 15%, 시가화 지역이 약 17%를 차지합니다. 이 중 신규 태양광이 들어갈 수 있는 후보지를 하나씩 점검해 봅니다.
산지(임야)는 사실상 막혔습니다. 2018년 무분별한 산지태양광으로 식생보전 III~IV등급 산림 26.6㎢(여의도 면적의 9배)가 훼손되었고(국립환경과학원, 2019), 이에 정부는 임야 태양광 REC 가중치를 0.7로 하향하고 산지 일시사용허가제와 원상복구 의무를 도입했습니다(산업통상자원부, 2019). 신규 산지 태양광은 정책적으로 봉쇄된 상태입니다.
건물 옥상·산단·주차장은 잠재량이 이론적으로는 수십 GW에 이르지만, 분산도가 높아 단가가 비싸고 보급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수상태양광은 댐·저수지 활용이 가능하지만 절대 면적이 작아 잠재량이 5GW를 넘기 어렵습니다. 염해간척지도 일시사용 기간이 20년으로 연장되었지만 절대 면적 한계로 수 GW 수준에 머무릅니다(농식품부, 2023).
남는 것은 농지입니다. 그러나 농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농지를 갈아엎고 패널을 까는 농지 전용 방식은 농지를 영구적으로 잃습니다.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농지법 1조의 경자유전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를 농지로 유지하면서 패널을 농지 위 3~4m 높이에 설치해 농사와 발전을 병행합니다(농민신문, 2025). 농업 생산은 70~80% 수준으로 유지되고, 발전 수익이 농가 소득에 더해집니다.
산지는 막혔습니다. 옥상·수상·주차장·간척지를 모두 합쳐도 최대 약 48GW에 그칩니다. NDC 최저 시나리오(130GW)와도 80GW 이상 모자랍니다. 결국 농지 외에 답이 없고, 농지를 잃지 않을 유일한 길이 영농형 태양광입니다.
4. 농지에 들어와야 할 태양광은 얼마나 되는가
그렇다면 한국 농지에서 영농형 태양광의 잠재량은 얼마나 될까요?
2024년 기준 한국의 경지면적은 1,504,615ha(약 150.5만 ha)입니다(국가데이터처, 2024). 20년 전인 2003년의 184.6만 ha에서 34만 ha 줄어든 수치이고, 매년 약 1만 ha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 시나리오 | 활용 농지 면적 | 활용 비율 | 발전 설비 잠재량 | 비고 |
|---|---|---|---|---|
| 정부 농촌태양광 보급 | 1.3만 ha | 약 0.9% | 10GW | 농지전용 포함 — 농지 영구 손실 |
| 시민사회 권장(넥스트·녹색전환연구소) | 11.8만 ha | 6.2% | 60GW | 영농형 위주 — 농지 보전 |
| 영농형 이론 잠재량(KEEI) | 약 157만 ha | 100% | 682GW | 발전효율 17.5% 가정 — 이론치 |
출처: 농림축산식품부(2023), 넥스트·녹색전환연구소(2024), 에너지경제연구원(2024)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농지의 6%만 영농형으로 활용해도 60GW, 즉 NDC 보수 시나리오의 절반 가까이를 농지라는 단일 입지만으로도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한국 농지가 NDC 목표를 단독으로 충당하고도 남는 잠재량을 가지고 있습니다(에너지경제연구원, 2024).
한국 농지는 한국 재생에너지 전환의 마지막 카드입니다. 문제는 그 카드를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5. 그래서 영농형 태양광인가 — 세 가지 논리축의 수렴
영농형 태양광은 단일한 이유로 추진되는 정책이 아닙니다. 세 가지 다른 정책 목표가 영농형이라는 한 점에서 만납니다.
첫째, 재생에너지 확충 논리. 농지 외에 100GW급 부지가 한국에 없습니다. 농지 활용은 불가피합니다. 단 농지 전용 방식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므로, 영농형이 갈등을 가장 낮추는 경로입니다.
둘째, 식량안보 논리. 농지 전용은 농지를 영구히 잃지만, 영농형은 농지법상 농지로 유지되고 농사가 계속됩니다. 작물 생산성도 차광율을 30% 이내로 유지하면 70~80% 수준이 보전됩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3).
셋째, 농촌 사회 유지 논리. 2024년 농가 평균소득은 5,060만 원으로 전년 대비 0.5% 감소했습니다(국가데이터처, 2025). 농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55.8%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국가데이터처, 2025). 농촌은 이미 한계에 와 있습니다. 영농형은 농가에 안정적 추가 소득원을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 수단입니다.
단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사업 주체가 외부 자본이 아니라 농민이어야 합니다. 외부 자본 임차형은 농촌을 돕지 않을 뿐 아니라, 영농형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사실상 농지를 잠식하는 가짜 영농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진척도 이 방향을 가리킵니다. 2024년 4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영농형 태양광 도입 전략」을 발표하면서 ❶농업인을 사업 주체로 설정, ❷비우량농지 중심 집적화, ❸촘촘한 관리체계로 부실영농 방지를 3대 원칙으로 못 박았습니다(농식품부, 2024). 2026년 5월 7일,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도의 첫 단추가 채워졌습니다. 핵심 조항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현행 농지법상 최대 8년(5년+3년)이었던 일시사용 기간을 최대 23년으로 연장해 태양광 설비 수명(20~25년)과 일치시켰습니다. 둘째, 외부 투기 자본 유입을 막기 위해 사업 주체를 농업인·농업법인 등 실제 농업인으로 제한했습니다. 셋째, 그동안 설치가 불가능했던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에도 영농형 태양광 설치를 허용했습니다.
시사점
그 청구서는 이미 농지 위에 놓여 있습니다.
121.9GW라는 숫자는 농촌에서 만들어진 숫자가 아닙니다. 데이터센터·반도체·전기차가 만들어낸 수요에,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NDC가 더해져 도출된 숫자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를 받을 땅은 농촌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청구서에 농업계가 답을 미루면, 답은 농민이 빠진 채로 결정됩니다. 농지를 누가, 어떻게, 누구의 이익을 위해 쓸 것인지를 외부 자본과 산업부와 발전 사업자들이 정하게 됩니다.
영농형 태양광은 이상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방어선입니다. 동시에 농업이 에너지 전환에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카드이기도 합니다. 농지를 지키면서 발전 수익이 농가에 돌아오는 모델은 영농형 외에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일은 영농형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아니라, 누가 사업 주체가 될 것인지, 농지의 어디에 어떤 작물과 함께 들어갈 것인지, 부실영농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를 농민과 농업계가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다음 편(2편)에서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 통과 이후의 풍경을 다룹니다. 식량안보·공급망·농가 소득·농촌 사회의 네 축에서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그리고 농민의 관점에서 법이 채우지 못한 빈자리에 어떤 정책이 더해져야 하는지를 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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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산업통상자원부 (2019). 임야 태양광 REC 가중치 조정 및 산지 일시사용허가 제도 개선.
- 산업통상자원부 (2025).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
- 산업통상자원부 (2025.9). 제6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 수립 추진 보도자료.
- 기후에너지환경부 (2025).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시나리오.
- 농림축산식품부 (2024). 영농형 태양광 도입 전략.
- 국가데이터처 (2025). 2024년 경지면적조사 결과; 2024년 농가경제조사 결과; 2024년 농림어업조사.
- 에너지경제연구원 (2024). 영농형 태양광 주요 논의 동향과 시사점.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 24-14호.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3). 영농형 태양광 추진을 위한 정책방안 마련 연구.
- 사단법인 넥스트·녹색전환연구소 (2024). 영농형 태양광 보급 잠재량 분석.
- 기후솔루션 (2025). 한국 2035년 NDC 61% 가능 — 실현가능한 감축 경로.
- 법무법인 세종 (2025).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 뉴스레터.
- 전기신문 (2025.10.17).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추진.
- 농민신문 (2025.10.24). 정부, 영농형 태양광 본격 추진.
- 국회 (2026.05.07).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