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네덜란드·프랑스·독일·미국 농지제도 국제 비교
한국이 직면한 농지 문제 — 파편화, 소유-경작 분리, 임차권 공백, 투기와 전용 — 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섯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했다. 소유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가, 경작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들어가며 —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길
농지는 어떤 선진국에서도 “일반 부동산”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식량안보, 농촌 유지, 경작자 보호라는 목표 때문에 모든 나라가 농지 시장에 공공의 손을 개입시킨다. 다만 개입의 방식은 다르다. 일본은 농지를 중간 기관이 받아 재편하고, 프랑스는 선매권으로 매매를 가로챈다. 네덜란드는 지역 전체를 재구획하고, 독일은 거래 자체를 허가제로 관리한다. 미국은 개발권을 국가가 돈으로 사서 보전한다.
다섯 나라는 서로 다른 역사·정치·농업 구조 위에서 각자의 해법을 만들었다. 하나의 모델을 그대로 복사해 올 수는 없지만, 다섯 나라가 공유하는 공통 원칙은 한국에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이 글은 각국의 핵심 제도를 소개한 뒤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한국에 유효한 시사점을 정리한다.
농지중간관리기구 + 지역계획
적극적 중개 기관이 농지를 받아 재편해 배분한다
일본은 2014년 농지중간관리기구(農地中間管理機構) 제도를 도입했다. 통칭 “농지은행(農地バンク)”이다. 도도부현마다 한 개씩 지정되며, 농지를 빌려주려는 사람에서 기구가 직접 빌려 받아, 재구획·정비한 뒤 경작 희망자에게 재임대한다. 한국 농지은행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역할은 다르다. 한국이 중개에 머문다면, 일본 기구는 스스로 중간 수취인이 되어 집적화를 적극 추동한다.
2023년 4월부터는 지역계획(地域計画) 제도가 법정화됐다. 시정촌이 주민·농업자와 협의해 “누가 어느 농지를 경작할 것인가”를 필지 단위로 그린 목표지도(目標地図)를 작성한다. 2025년 4월부터는 농지 임대차가 농지은행 경유로 일원화되었다.
집적화 인센티브
농지중간관리기구가 15년 이상 빌린 농지에 대해서는 농가 부담 제로로 기반정비사업이 가능하다. 대상 10ha 이상, 중산간지역 5ha 이상 조건. 농지를 기구에 맡기면 국가가 정비를 해주는 구조로, 자발적 집적화를 유도한다.
SAFER의 선매권
공공 기관이 농지 매매에 끼어들어 청년농·규모화를 위해 대체 구매한다
프랑스의 SAFER(Société d’Aménagement Foncier et d’Établissement Rural)는 1960년 농업지향법으로 설립됐다. 1962년부터 선매권(droit de préemption)을 부여받았다. 농지·산림·농가가 매매될 때 공증인은 SAFER에 반드시 통보해야 하고, SAFER는 2개월 이내에 선매권을 행사할 수 있다. 원래 매수자를 대체해 SAFER가 대신 사고, 청년농이나 규모화가 필요한 인근 농가에 재판매·재임대한다.
매매가가 시장가와 현저히 차이 날 경우 SAFER는 가격 조정 선매도 가능하다. 2015년 Macron법으로 증여까지, 2023년 4월 Sempastous법으로 농지 보유 회사 지분 매매까지 선매권이 확장됐다. 기업형 농지 회사의 우회 취득 구멍을 막기 위한 조치다.
실제 개입 빈도
SAFER의 선매권이 실제로 발동되는 경우는 전체 매매의 약 1%(가격 조정 선매 추가 0.5%)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1%의 가능성”이 시장 참여자 전원에게 규율로 작용한다. SAFER는 국가·지자체·농업조직·은행이 공동 출자한 반공기업으로, 민관 거버넌스 균형이 특징이다.
Ruilverkaveling — 지역 전체 재구획
파편화된 필지를 지역 단위로 통째로 재편해 큰 블록으로 재분배한다
네덜란드는 파편화 문제를 정면으로 풀었다. Ruilverkaveling(루일페르카벨링, 농지 재구획)은 1924년 첫 법이 제정됐고, 1938년 강제 재구획 근거가 마련된 이래 100년 가까이 작동해 온 제도다. 현재는 2006년 「농촌지역 정비법」으로 통합됐다.
방식은 단순하고 강력하다. 특정 지역 전체의 농지를 공공이 주도해 재구획한다. 소유자들의 임차권·소유권은 그대로 유지하되, 파편화된 필지를 교환해 큰 블록으로 재배치한다. 각자의 토지 가치 총합은 유지되지만, 필지 모양과 위치가 바뀐다. 관개·배수·도로 정비도 같이 이뤄진다.
결과
네덜란드 농업용지는 약 200만 ha로 국토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농업의 GDP 기여도는 1.6%에 불과하지만, 세계 2위 농산물 수출국이다. 파편화 해소가 곧 생산성·경쟁력으로 이어진 전형적 사례다.
Grundstücksverkehrsgesetz — 거래 허가제
일정 규모 이상 농지 매매는 농업당국의 사전 허가가 필수다
독일의 농지거래법(Grundstücksverkehrsgesetz, GrdstVG)은 1961년 제정됐다. 일정 규모 이상의 농지·산림 매매는 관할 농업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성립한다. 허가 면제 기준은 주(州)마다 다르며 0.15ha에서 2ha 사이다.
법은 세 가지 경우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정한다. 첫째, 해당 매매가 농지의 “불건전한 분배”(ungesunde Verteilung)를 초래할 때. 둘째, 경제적이지 않은 필지 축소를 낳을 때. 셋째, 매매가가 토지 가치와 현저한 불균형일 때. 매매가가 시장가를 크게 상회하면 허가가 거부될 수 있다.
“불건전한 분배”란
핵심은 첫 번째 기준이다. 비농업인이 농지를 사려 하는데 동일한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농민이 존재할 경우, 농민에게 선매권이 주어진다. 비농업인의 농지 취득이 원천 차단되지는 않지만, 농민이 우선권을 갖는 구조다.
ACEP — 개발권을 매입해 영구 보전
정부가 토지소유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비농업 전용 권리”를 영구 포기시킨다
미국은 다르다. 토지 소유권을 직접 제한하지 않고, 대신 개발권을 돈을 주고 산다. 2014년 농업법(Farm Bill)으로 도입된 ACEP(Agricultural Conservation Easement Program)는 기존 3개 프로그램을 통합한 제도다. USDA 자연자원보전청(NRCS)이 운영한다.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토지소유자는 농지를 계속 소유·경작하되, 비농업 용도로 전환할 권리만 영구 포기한다. 대가로 공정시장가의 최대 50%(환경적 가치가 큰 초지는 75%)를 NRCS로부터 지급받는다. 주정부·지방정부·비영리 Land Trust 등 “eligible entity”가 easement를 보유·관리한다.
규모
NRCS는 미국 최대 easement 보유 기관으로, 500만 에이커 이상(약 200만 ha)을 영구 보전 대상으로 관리한다. American Farmland Trust(AFT) 등 민간 Land Trust가 핵심 파트너로, AFT는 1980년 설립 이래 700만 에이커를 보호했다.
한눈에 보는 비교
다섯 나라가 공유하는 다섯 가지 원칙
첫째, 농지 소유권의 절대성을 제한한다. 5개국 모두 농지를 일반 부동산과 다르게 취급한다. 일본·네덜란드는 이용을 재편하는 방식으로, 프랑스·독일은 거래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미국은 개발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각기 제한한다. “소유자가 자유롭게 팔고 전용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5개국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공공 또는 반공 기관이 시장에 개입한다. 농지가 “사적 거래의 대상”이 되는 순간 파편화·투기·세대 단절이 일어난다는 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농지중간관리기구, 프랑스 SAFER, 네덜란드 농촌지역청, 독일 농업당국, 미국 NRCS — 이름은 달라도 역할은 같다.
셋째, 가격·매매·임대차 중 적어도 하나는 규제한다. 독일은 가격, 프랑스는 매매, 일본은 임대차, 네덜란드는 재구획을 통한 간접 규제, 미국은 개발권이라는 새로운 권리 구성을 통한 규제다. “규제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넷째, 경작자 쪽을 보호한다. 프랑스 임차농 선매권, 독일 농민 우선권, 일본 지역계획의 경작자 중심 배분, 미국 easement 유지 조건 모두 경작자의 지위를 확보해 준다. 소유는 유연하되, 경작은 안정적으로 — 이것이 공통의 설계 원리다.
다섯째, 차세대 농업 인력의 진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프랑스의 SAFER가 선매권을 통해 청년농의 정착을 실질적으로 견인하고, 일본이 ‘지역계획’ 내 ‘목표지도’ 작성을 통해 농지 경작의 세대교체를 법제화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농민 우선매수권이나 미국의 농지보전부담권(Easement) 역시 후계 농업인의 안정적인 영농 승계를 돕는 법적 안전망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이 직수입할 수 없는 것, 흡수해야 할 것
그러나 어느 나라 제도도 한국에 그대로 복사할 수는 없다. 각 제도는 해당 국가의 토지 소유 역사, 농업 조직, 행정 역량 위에서 작동한다.
직수입 불가능한 것. 독일식 허가제는 지자체의 전문 행정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농지 행정이 지자체·농지은행·농관원으로 분산된 상태다. 프랑스 SAFER 모델은 농업조직·국가·금융이 공동 운영하는 거버넌스가 전제인데, 한국 농협·국가·농업단체 관계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미국 easement는 사유재산권 중심 법체계와 매칭펀드 재정을 요구하는데, 한국의 공적직불 재정 구조와 법 전통은 다르다.
흡수해야 할 원칙. 다섯 나라가 공유하는 원칙은 한국 맥락에서도 유효하다. 농지은행을 단순 중개에서 일본식 “수취-재편-재배분”의 적극 기관으로 격상하는 것, 농지 매매에 제한적 선매권을 부여하는 것, 임차권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것, 청년농 진입 경로를 제도적으로 깔아 두는 것 — 이 네 방향은 한국에서도 현실적으로 추진 가능하다.
다섯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하나의 공통된 질문에 답했다. “농지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일본은 재편으로, 프랑스는 선매로, 네덜란드는 재구획으로, 독일은 허가로, 미국은 보전권 매입으로 답했다.
한국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다만 지금까지 답을 미뤄왔을 뿐이다. 2편에서 드러난 여섯 가지 구조적 문제는 해결을 기다리고 있고, 다섯 나라의 경험은 그 해결의 방향을 비춘다. 다음 편(4편)에서는 이 참조점 위에서 한국이 걸어갈 수 있는 다섯 가지 구체적 개혁 방향을 제시한다.
참고문헌
- 일본 農林水産省(농림수산성), 「농지중간관리기구 FAQ」, 2024; 「지역계획 제도 안내」, 2023.
- 일본 국회, 「식량·농업·농촌기본법」 2024년 개정.
- FNSafer(프랑스 SAFER 전국연합), “1960-2010 Les Safer: Repères historiques”, 2018.
- Scottish Land Commission, Review of France’s SAFER Land Market Interventions, 2023.
- France, Loi n° 2021-1756 (Sempastous법), 2021.12.23.
- Van den Brink, A. & Molema, A.M., “The origins of Dutch rural planning”, Planning Perspectives 23(4), 2008.
- Grundstücksverkehrsgesetz (GrdstVG), Bundesgesetzblatt, 1961.
- Ciaian, P. et al., Agricultural land market regulations in the EU Member States, JRC Technical Report, 2021.
- USDA NRCS, “Agricultural Conservation Easement Program”, 2024.
- American Farmland Trust, “Status of State Purchase of Agricultural Conservation Easement Program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