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지제도의 6가지 구조적 문제
현재 한국 농지제도의 문제는 ‘제도가 오래됐다’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가 지키려던 원칙과 현실이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 분리는 어떻게 쌓였는가. 여섯 개의 문제로 해부한다.
들어가며 — 여섯 개의 문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패턴
한국 농지제도에는 많은 문제가 거론된다. 그러나 각 문제를 따로 보면 그 뿌리를 놓치게 된다. 여섯 개의 문제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의 패턴을 공유한다. 원칙을 지키되, 현실은 예외로 해결한다.
헌법 제121조 1항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선언한다. 그리고 2항에서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여 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는 예외를 둔다. 농지법은 이 예외를 구체화하면서 더 많은 하위 예외를 만들었고, 그 예외들은 현장에서 또 다른 예외를 낳았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 원칙은 법 조문으로 남고 예외가 현실을 지배한다.
문제 01경자유전의 화석화 — 원칙과 예외의 역전
경자유전 원칙은 1948년 제헌헌법 이래 한국 농업제도의 근간이다. 1949년 농지개혁법은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조항으로 지주-소작제를 해체했고, 1987년 개정헌법은 이 원칙을 121조 1항에 명문화했다. 그러나 2항에서 “합리적 이용을 위한” 임대차와 위탁경영을 예외로 인정한 순간, 예외의 출구가 열렸다.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여 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1994년 제정된 농지법 제6조 2항은 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구체적 예외를 열거한다. 상속 농지(1ha까지), 이농자 보유농지(1ha까지), 주말·체험 영농(1,000㎡ 미만), 농업법인, 지자체·학교 등 공공기관, 영농조합법인. 각 예외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지만, 합치면 사실상 비농업인도 정상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결과는 1편에서 본 숫자로 드러난다. 임차농지 비율 50%, 임대수탁 농지의 76%가 비농업인 소유. 예외 조항들을 모두 합치면, 경자유전 원칙은 사실상 매매 단계에서의 취득자격 제한에서만 남아 있다. 임대차 영역에서는 이미 다양한 예외를 통해 원칙이 우회되고 있다. 소작을 금지한 원칙이, 임대차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현실을 막지 못한 것이다.
문제 02농지 파편화 — 평균 1.5ha라는 함정
한국 농가의 평균 경지면적은 1.5~1.6ha 수준에서 거의 10년째 변동이 없다. 경지규모 2ha 미만의 중소농이 87%, 이 중 1ha 미만 소농이 73.5%다. 해방 직후 1945년 호당 평균 1.078ha와 비교하면 80년이 지나도 농지 규모는 별로 커지지 않았다.
파편화가 고착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상속에 의한 필지 분할. 농민이 사망하면 자녀 여러 명에게 농지가 나뉘어 상속되고, 이 과정에서 필지는 점점 잘게 쪼개진다. 둘째, 농지가격 대비 수익성 역전. 농업소득만으로는 농지를 매입할 수 없는 구조에서 농민은 확장 유인을 잃는다. 셋째, 집적화 제도의 부재. 일본의 농지중간관리기구나 프랑스의 SAFER 같은 공공 중개기관이 집적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한국에서는 제대로 수행하는 기관이 없다.
파편화는 기계화·규모화·생산성 향상을 구조적으로 가로막는다. 개별 농가가 스마트 농업 기술을 도입해도 1~2ha 단위에서는 투자 회수가 어렵다. 농지 하나하나는 영세하지만 그걸 묶어낼 제도가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문제 03소유-경작 분리 — 제도 바깥의 소작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개인 간 임대차를 금지하면서 예외 조항을 통해 일부만 허용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현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농민이 늙어 경작을 못 하지만 땅은 팔고 싶지 않을 때, 젊은 농민이 경작하고 싶지만 땅을 살 돈이 없을 때 — 이 사이의 합리적 임대 수요는 공식 제도 바깥에서 해결된다.
구조적 왜곡을 만든 장치는 세 가지다. 첫째, 상속 농지다. 비농업인 자녀도 농지를 상속받을 수 있고, 1ha 한도까지는 임대도 가능하다. 고령농의 사망이 가속되면서 상속 농지는 향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둘째, 자경 8년 양도세 감면이다. 이 제도는 장기 영농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위장 자경을 부추기는 인센티브로 작동한다. 농지를 실제로 짓지 않으면서 자경한 것처럼 꾸미는 관행이 확산됐다. 셋째, 주말·체험 영농이다. 300평 미만 농지 취득이 쉬워지면서 기획부동산업자들의 농업회사법인을 통한 지분 쪼개기 통로로 활용된다.
장기적으로는 8년 자경 시 부여되는 양도소득세 감면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농지를 장기간 경작지로 제공해 농지 보전에 기여한 경우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영근 법률사무소 온마음 변호사, 국회 ‘지속 가능한 농업 실현을 위한 농지제도 개선 토론회’, 2025년 12월 15일
전문가들은 이 구조의 핵심을 양도세 감면 제도로 본다. 그러나 농지법은 여전히 “원칙적 금지 + 예외 허용” 구조를 유지하고, 비공식 임대차와 단기 계약이 현장에서 일상화되어 있다. 계약은 문서화되지 않고, 임차농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문제 04농지은행의 한계 — 중개기관의 구조적 무력함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은 2005년부터 농지 임대·매매를 중개하는 공식 기관으로 운영되어 왔다. 매입비축, 임대수탁, 영농규모화, 경영회생지원, 농지연금 등 여러 사업을 갖추고 있다. 2022년 농지은행 예산은 약 1.4조 원에 달한다. 2022년 2월에는 농지은행관리원이 별도 출범해 농지 상시조사·관리 체계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농지은행이 한국 농지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꿨다고 보기 어렵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규모의 문제다. 한국 농지 150만ha 중 농지은행이 연간 취급하는 면적은 일부에 그친다. 일본의 농지중간관리기구가 집적화를 강하게 추동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 농지은행의 레버리지는 약하다. 둘째, 행정 분리다. 농지 취득·소유·전용 허가는 지자체가 담당하고, 거래 중개는 농지은행이 담당하며, 농업경영체 등록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담당한다. 한 명의 농민이 업무 처리를 위해 세 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구조다(2024년 업무협약 이전).
셋째, 가장 근본적인 한계 — 농지은행은 중개자에 머물고 ‘경영 파트너’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농지중간관리기구가 농지를 위탁받아 재구획·재편해서 대규모 경영체에 재임대하는 적극적 기능을 수행하는 반면, 한국 농지은행은 소유자와 경작자를 연결하는 수동적 중개에 가깝다. 그래서 임대수탁 농지의 76%가 비농업인 소유라는 역설도 생긴다. 농지은행을 통했는데도 경자유전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 05농지 투기와 전용 — 부동산화의 관성
한국 농지의 핵심 모순은 “생산성은 낮지만 자산가치는 계속 오른다”는 점이다. 농지실거래가격지수는 2010년 0.76에서 2020년 1.76으로 10년간 2.3배 상승했고, 연간 평균 농지거래는 24만 5천 건이다(1편 참조). 같은 기간 농업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이 구조는 두 가지 관성을 만든다. 첫째, 농지를 취득하면 유리한 구조다. 경작으로 얻는 수익은 낮지만 보유만 해도 자산가치가 오르고, 양도세 감면까지 받을 수 있다. 둘째, 농지 전용 기대심리다. 도시 인근 농지나 개발 예정지 인접 농지는 전용 후 지가 상승을 노리는 투기 수요를 끌어들인다. 2021년 LH 직원 땅투기 사건은 이 관성이 공공기관에까지 파고들어 있음을 드러냈다.
제도는 이 관성을 막기보다 묵인해 왔다. 농지 전용 이익은 농업 부문으로 환수되지 않고 대부분 지주에게 귀속된다. 주말·체험 영농 제도는 투기 진입로가 되었고, 농업회사법인의 지분 쪼개기는 기획부동산의 도구가 되었다. 2021년 LH 사태 이후 농지법이 강화됐지만, 현행 조세·거래 체계는 여전히 농지 보유와 전용 기대를 유리하게 만드는 구조다. 전용 이익의 원천 환수 같은 근본적인 구조 개혁 없이는 투기 동인이 사라지지 않는다.
세대전환 직불제를 신설해 고령농이 청년농에게 임대·매도할 경우 직불금을 지급하고, 지역 내 승계를 조건으로 직불 단가를 차등하는 등 농지 순환을 유도해야 한다.
정승민 한국4-H중앙연합회 사무국장, 국회 ‘지속 가능한 농업 실현을 위한 농지제도 개선 토론회’, 2025년 12월 15일 (한국농어민신문 2025.12.16 보도)
문제 06임차권 공백 — 짓는 사람이 가장 약하다
한국 농지의 절반을 임차농이 경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법적 지위는 가장 불안정하다. 현행 농지법은 임대차 최소 기간을 3년(다년생 작물은 5년)으로 정하지만, 현실에서는 1~2년 단기 계약이나 구두 계약이 흔하다. 농지법이 원칙적으로 개인 간 임대차를 금지하기 때문에 계약 자체가 양성화되지 못하는 구조다.
이 공백은 세 가지 결과를 낳는다. 첫째, 장기 투자 불가. 3년짜리 계약으로는 토양 개량이나 과수 재배, 시설 투자 같은 장기 영농에 나설 수 없다. 둘째, 임차료 상승 압력. 계약이 단기일수록 지주의 가격 협상력이 커진다. 셋째, 청년 진입 장벽. 자기 땅이 없고 장기 임차도 어려운 청년농이 진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앞서 본 청년농가 4년 만에 63% 감소(1편 참조)는 이 구조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픽 04 — 농지 이용 취득·경작·임대·상속·전용 5단계별 핵심 제도 공백. 각 단계에서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누적된다.
원칙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비용은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주체가 치른다. 경자유전 원칙은 ‘경작하는 자’를 보호한다고 했지만, 정작 오늘날 경작하는 자가 가장 취약하다. 이것이 경자유전 원칙의 가장 역설적인 귀결이다.
쌓인 예외가 원칙을 뒤집었다
여섯 개의 문제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분명해진다. 어떤 것도 한 사람의 악의나 한 제도의 실패 때문이 아니다. 각각의 예외 조항은 그 시점에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상속은 가족 재산권의 문제였고, 양도세 감면은 장기 영농 보상이었으며, 주말 영농은 도시민의 농업 체험 기회였다. 하나하나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60년에 걸쳐 쌓인 예외들은 서로를 강화하며 원칙을 뒤집었다. 경자유전은 조문으로는 살아 있지만, 농지 현장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제도는 있는 것 같으나 없고, 없는 것 같으나 있는 상태 — 이것이 현재 한국 농지제도의 실체다.
여섯 개의 문제는 서로 연결된다. 경자유전의 화석화는 농지은행이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이고, 파편화는 임차권 공백과 맞물리며, 투기와 전용은 청년농이 진입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하나를 손보면 나머지가 움직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도 개혁은 하나의 법 조항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농지 취득-이용-임대-상속-전용 전 단계를 관통하는 새로운 틀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 전에, 먼저 다른 나라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봐야 한다. 다음 편(3편)에서는 일본·네덜란드·프랑스·독일·미국 다섯 나라의 농지제도를 비교한다.
주요 출처
-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농지법 제6조, 제23조.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지 소유·이용제도 개편방안 연구』, 2015.
- 참여연대, 「정부의 ‘농업패싱’ 이대로 괜찮은가?」, 2020.
- 경향신문, “‘경자유전’을 흔드는 손”, 2017.12.31.
- 한국농어민신문, “농지임대차 허용·자경 8년 양도세 감면 폐지 요구 커진다”, 2025.12.16.
- 국민일보, “‘경자유전 원칙’ 낡았지만 폐기도 어렵다”, 2026.4.8.
-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관리원 출범 보도자료」, 2022.2.18; 농지은행 사업 현황.
- 월간친환경, “농지 투기 근절과 농지 이용 정상화를 위한 농지제도 전환 대사회 토론회”, 2026.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