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은 유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료·비닐·유류·사료·포장재의 조달비용을 끌어올리고, 농가 경영비와 식품 가격에 서로 다른 시차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경로와 취약 지점을 차례로 짚습니다.
모두가 기름값을 본다, 아무도 농가를 보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은 2026년 봄 크게 위축됐습니다. 4월 13일 미국은 이란 항구를 드나드는 선박을 대상으로 봉쇄를 시행했습니다. 미 중부사령부는 비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의 해협 통항은 막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군사적 긴장과 보험·운임 부담은 항로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웠습니다.
관련 보도는 주로 유가와 비축유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유가가 건드리는 것은 주유소만이 아니다. 비료, 비닐, 유류, 사료, 포장재 — 농사의 기본 투입재 다섯 가지가 한꺼번에 뛴다. 이제 살펴야 할 것은 이 충격이 언제, 어느 정도로 국내 식품 가격에 전달되는가입니다.
5대 투입재 가격이 함께 압박받는다
비료. 인산비료의 핵심 원료인 황의 절반 이상은 석유·천연가스 정제 부산물이다. 원유와 가스 생산·수송에 차질이 생기면 황에서 황산·인산·비료로 이어지는 공급망도 영향을 받습니다. 세계 황 수출의 절반, 비료 수출의 3분의 1이 호르무즈를 지난다. 요소 비료는 수입의 38.4%가 이 해협을 거치며, 국제가격은 톤당 684달러를 돌파했고 대체 물량조차 톤당 800달러 수준에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이 질소-칼리 복합비료·인산비료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2024년 기준 연간 수출의 50~75%가 막힌 상태다. 중동 물류 불안과 중국의 수출 제한이 동시에 비료 공급을 압박하는 구조입니다.
뼈아픈 대목은 따로 있다. 2021년 요소수 대란 이후 한국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수입선을 다변화했고, 그 방향 중 하나가 중동이었다. 그 결과 중동 요소 의존도는 43.7%까지 올라갔다.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경로와 지역에 집중된 위험까지 분산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비닐. 멀칭·하우스 비닐의 원료 나프타는 한 달 만에 47%, 전년 대비 69% 올랐다. 농업용 비닐(LLDPE) 가격은 2월 kg당 1,390원에서 4월 2,290원으로 65% 급등했다. 나프타는 비닐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육묘 트레이, 비료 포대, 관수 호스, 축산 사일리지 필름까지 여러 농업 자재가 석유화학 공급망의 영향을 받습니다.
유류·사료·포장재도 함께 뛴다. 경유는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섰고, 사료용 곡물은 100% 수입이라 환율·해상운임·유가의 삼중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플라스틱 식품 포장재도 나프타 가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용물 가격과 별개로 비용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위 효과 — 비용 상승과 판매가격 약세가 겹친다
더 위험한 대목은, 생산비는 오르는데 농산물 값은 같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식품부 4월 기준 오이는 전년 대비 9.9%, 애호박은 21.1%, 토마토는 8.1% 하락했다.
겉으로는 “채소값이 싸졌다”지만, 이 가격 하락에는 품목별 출하량뿐 아니라 소비 위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공급 과잉이라면 다음 시즌에 면적을 줄여 대응할 수 있지만, 수요 약세까지 겹치면 재배면적 조정만으로 수익성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투입비는 30~65% 오르는데 판매가는 떨어진다. 소득이 양쪽에서 잘리는 전형적인 가위 효과다.
스마트팜 청년농에 집중되는 재무 위험
시설농가, 특히 융자로 스마트팜에 투자한 청년농은 이 충격을 정면으로 맞는다. 온실 하나에 수억~십수억 원이 들어가고, 지원사업에 따라 보조금·자부담·융자가 결합된 구조로 투자비를 마련합니다. 5년 거치, 10년 상환. 예를 들어 8억 원 규모 온실에 자부담 1.6억 원과 융자 2.4억 원이 투입됐다면, 상환 조건에 따라 매달 상당한 원리금 부담이 발생합니다. 생산량과 판매가격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면 현금흐름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습니다.
난방비 비중은 시설농가 경영비의 30~50%다. 유가 급등은 곧바로 경영비 15~25% 급등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비료·비닐 상승이 겹친다. 매출은 줄고, 고정비 부담은 커지고, 융자 상환금은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간다.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순간 버티기는 생존의 문제로 바뀐다.
가격 충격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차다. 봄 파종에 쓰는 비료와 비닐 일부는 지난해 하반기에 확보한 재고 가격이 반영됩니다. 반면 여름·가을에 사용할 물량은 최근의 높은 조달가격으로 다시 구매해야 할 수 있습니다. 농가는 투입비를 먼저 지불한 뒤 불확실한 생산량과 판매가격을 감수해야 합니다.
비료 가격 상승은 5~6월 생산분부터 반영되고, 사료 가격은 6~12개월 시차로 축산물에 전가되며, 나프타 기반 포장재는 이미 가격이 오르고 있다. 품목에 따라 3개월에서 1년의 시차를 두고 식품 원가에 압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밀 자급률 2%에 불과한 밀가루·빵·라면, 대두유·조리유·마요네즈, 소·돼지·닭고기·우유, 그리고 전 품목의 포장재 — 여러 품목이 동시에 가격 상승 압력에 노출되는 구조입니다.
한국의 수입물가는 이미 8개월째 오르고 있고, 미국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9% 상승으로 2022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47.6으로 사상 최저를 경신했다. 소비 심리도 약해진 만큼 현재의 일부 채소 가격 하락만으로 향후 식품 물가가 안정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보조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회는 농업용 비닐 긴급 지원에 154억 원을 의결했고, 면세유·비료 추경 등 지원이 이어진다. 다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비교하면 규모·커버리지가 현저히 줄었다. 2022년에는 비료 인상분의 80%를 공공이 분담(정부 30·지자체 20·농협 30)했고 무기질 비료 전 품목이 대상이었으며 예산은 약 1,800억 원이었다. 2026년 현재는 20~30% 수준의 정액 지원, 일부 품목·한도제, 1,000억 원 미만이다.
2022년에는 국제 곡물가도 함께 올라 농가가 비싼 비료를 써도 수취가로 일정 부분 완충할 수 있었다. 2026년은 수취가가 오히려 떨어지는 가위 구조라 보조금의 실질적인 완충 효과도 제한될 수 있습니다.
남는 질문
단기 보조금만으로는 농가의 연속 적자를 막기 어렵다. 시설농가의 에너지 구조 전환, 청년농 부채 리파이낸싱, 투입재 공공 비축, 그리고 국제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는 대체 원료 확보 — 이 네 가지가 동시에 논의되어야 이번 위기의 두 번째·세 번째 파도에서 버틸 수 있다. 이러한 대응이 늦어지면 농가의 경영비 충격이 시차를 두고 소비자 가격과 국내 생산 기반에 전달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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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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