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잉글랜드의 밀 수확량은 전년보다 22%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궂은 날씨가 파종과 수확을 동시에 흔든 결과다. 반면 2023년 영국에서 소비된 식품 가운데 자국 생산분의 비율은 전체 식품 62%, 영국에서 생산 가능한 식품 75%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두 수치는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는 평소 얼마나 자국 생산에 기대는지를, 다른 하나는 기상이 나빴을 때 생산량이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보여 준다.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 연구개발은 생산량을 늘리는 기술뿐 아니라 충격을 덜 받고, 더 빨리 회복하며, 농가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
영국이 바꾼 것은 연구의 ‘순서’다
영국 환경식품농촌부(Defra)는 ‘농업혁신 프로그램(Farming Innovation Programme, FIP)’을 통해 아이디어 발굴부터 연구개발, 농가 실증, 상용화까지 단계별로 지원한다. 연구기관이 기술을 완성한 뒤 농가에 보급하는 일방향 모델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초기 아이디어는 타당성조사에서 가능성을 살피고, 협력 연구개발과 Farming Futures에서 기술을 다듬는다. 농가 현장에서는 ADOPT가 실제 조건에서 시험하며, Investor Partnerships는 공공자금과 민간투자를 연결해 시장 진입을 돕는다. 하나의 사업이 모든 단계를 맡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사업을 연구→실증→상용화→지속 사용의 경로로 배치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ADOPT에서는 농가가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이 경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치는 ADOPT다. 정식 명칭은 ‘농법과 기술의 개발 가속화(Accelerating Development of Practices and Technologies)’다. 농가·재배자·임업 경영체가 현장의 문제를 제안하고, 연구자나 기업과 함께 실제 농장에서 해법을 시험한다.
실험실에서 효과가 있었던 기술도 농장에서는 토양, 강수, 노동력, 장비, 비용 때문에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ADOPT는 이 간극을 연구의 마지막 변수가 아니라 별도의 지원 단계로 다룬다. 신청 경험이 적은 농가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액 지원도 제공한다.
첫 번째 선정에서는 30개 현장시험에 약 230만 파운드가 지원됐다. 중요한 것은 과제 수보다 시험 이후다. 농가가 기술을 계속 쓰는지, 중단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비용을 회수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추적해야 현장실증의 의미를 판단할 수 있다. 실패한 시험도 숨겨야 할 결과가 아니라 다음 연구의 출발점이다.
123백만 파운드, 숫자는 이렇게 읽어야 한다
Defra는 2026/27 회계연도 FIP 투자액을 1억 2,300만 파운드로 발표했다. 기존 7,000만 파운드에 추가 투자 5,300만 파운드를 더한 금액이다. 2026년 1월에는 Farming Futures의 15개 과제에 최소 2,150만 파운드를 배정했다. 질소비료 대체, 메탄 저감 사료, 분뇨 처리, 기후회복성 작물, 병 저항성 품종 등이 포함됐다.
다만 발표자료에 나오는 모든 금액을 더해서는 안 된다. 장기 약정, 특정 연도의 투자, 개별 공모의 선정액이 서로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 공개 금액 | 무엇을 뜻하나 | 읽을 때 주의할 점 |
|---|---|---|
| 2억 3,800만 파운드 초과 | 2026/27~2029/30년 Defra 조정 연구개발 전체 | 기초·응용연구부터 실증·도입까지 포괄하는 상위 범위 |
| 최소 2억 파운드 | 2030년까지 FIP에 투자하겠다는 장기 약정 | 연차 투자와 하위 공모액을 포함할 수 있음 |
| 1억 2,300만 파운드 | 2026/27 회계연도 FIP 투자 | 같은 해의 세부 공모액을 다시 더하면 중복 |
| 2,150만 파운드·15개 과제 | 2026년 발표된 Farming Futures 선정액 | FIP 안의 한 묶음이며 전체 예산이 아님 |
| 230만 파운드·30개 과제 | 2025년 발표된 ADOPT 첫 선정액 | 농가 주도 현장시험에 배정된 하위 금액 |
하지만 ‘지원했다’와 ‘회복력이 높아졌다’는 다르다
FIP의 강점은 연구, 농가 실증, 상용화가 서로 단절될 가능성을 낮춘 데 있다. 그러나 공개자료만으로는 어떤 사업이 가뭄·침수·고온에 따른 손실을 얼마나 줄였는지, 농가의 경영 회복을 얼마나 앞당겼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limate Change Committee)는 2025년 보고서에서 기후회복적 농업의 실제 이행을 ‘제한적’, 관련 정책과 계획을 ‘불충분’으로 평가했다. 이 평가는 2026년 Farming Roadmap 2050 발표 전의 것이므로 새 로드맵에 대한 사후평가는 아니다. 다만 연구개발만으로 농업 적응이 완성되지 않으며 토지, 물, 환경직불, 재해대응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과제는 분명히 보여 준다.
성과를 제대로 보려면 지표를 세 층으로 나눠야 한다.
- 무엇을 만들었나: 선정 과제 수, 참여 농가 수, 개발 기술 수
- 현장에 남았나: 실증 뒤 지속 사용률, 중단 사유, 투자 회수기간
- 위험을 줄였나: 재해 전후 수량·품질 변동, 회복기간, 물·비료·에너지 투입, 농가 순수익
현재 공개가 잘 되는 것은 첫 번째 층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층이 연결돼야 연구비가 식량안보와 농가의 기후회복력에 실제로 기여했는지 말할 수 있다.
한국이 가져올 것은 사업명이 아니라 연결 구조다
- 1. 연구과제를 ‘기술’이 아니라 ‘위험’에도 연결한다. 과제마다 가뭄·침수·고온·병해충 같은 위험유형, 대상 품목과 권역, 적응·감축·생산성 가운데 주된 목적, 현재 단계를 함께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특정 기술에 얼마를 썼는지만이 아니라 어떤 기후위험에 투자가 비어 있는지를 볼 수 있다.
- 2. 농가 공동실험을 독립된 연구 단계로 만든다. 연구기관의 시험포만으로는 지역별 토양과 경영 여건을 검증하기 어렵다. 농가, 농업기술원·농업기술센터, 연구기관, 기업이 시험을 함께 설계하고 같은 항목을 측정하는 별도 트랙이 필요하다. 효과가 없거나 중단된 사례도 같은 형식으로 남겨야 한다.
- 3. 실증 뒤의 성과를 정책지원과 연결한다. 여러 지역에서 효과와 경제성이 반복 확인된 기술·농법은 환경직불, 지역 물관리, 재해예방 투자, 정책금융과 연결할 수 있다. 연결의 기준은 ‘개발 완료’가 아니라 농가의 지속 사용, 위험 감소, 순수익 개선이어야 한다.
| 영국에서 볼 수 있는 장치 | 한국에 필요한 설계 | 반드시 확인할 결과 |
|---|---|---|
| 단계별 FIP 지원 | 과제·예산·성과를 잇는 공통 대장 | 연구가 실증과 상용화로 이어졌는가 |
| ADOPT 농가 주도 시험 | 품목·권역별 농가 공동실험 트랙 | 지속 사용률과 중단 사유는 무엇인가 |
| 기후·식량안보 위험 진단 | 과제별 기후위험 태그 | 수량 변동과 회복기간이 줄었는가 |
| 상용화·민간투자 연계 | 반복 검증 뒤 직불·금융·재해정책 연계 | 농가 순수익과 투자 회수가 개선됐는가 |
평가 단위를 ‘과제’에서 ‘위험’으로
영국 사례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연구비 규모가 아니다. 아이디어, 농가 실증, 상용화를 한 경로로 보고 농가를 기술의 최종 수요자가 아니라 실험의 공동 설계자로 세운 점이다.
한국이 여기에 한 걸음 더 보태야 한다면 평가 단위를 바꾸는 일이다. 몇 개 과제를 지원했는가에서 멈추지 않고, 어떤 기후위험을 얼마나 줄였으며 농가가 그 해법을 계속 쓰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농업 R&D가 기술 목록이 아니라 식량안보와 농가 회복력을 높이는 정책이 된다.
이 글은 KIFC 농업연구 허브의 해외 농업연구 비교 시리즈에 포함된다.
함께해주세요
농업 연구가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어떤 조건이 더 필요한지 의견을 보내주세요.
참고문헌
- Defra. United Kingdom Food Security Report 2024: Theme 2. 2024-12-11.
- Defra. Farming Roadmap 2050. 2026-06-24.
- Defra. Government response to the Farming Profitability Review. 2026-06-24.
- Defra Farming Blog. New £53 million investment for farming innovation. 2026-06-24.
- Defra·UKRI. £21.5m to drive farm innovation in England. 2026-01-31.
- UKRI. ADOPT funding guidance. 2025.
- Climate Change Committee. Progress in adapting to climate change: 2025 report to Parliament.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