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채소가 도매시장을 거치는 비율은 낮아졌다. 그러나 일본산 채소만 놓고 보면 지금도 약 80%가 도매시장을 거친다(農水省, 2023). 이는 우연이 아니라 채소라는 상품의 특성에서 비롯된 구조적 결과다.
읽기 가이드. 수입산까지 포함하면 경유율은 약 54%로 낮아진다.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는 가공품과 수입 채소가 전체 경유율을 낮춘 것이다. 일본산 채소가 80% 안팎의 경유율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려면 먼저 채소 가격이 왜 요동치는지 살펴봐야 한다.
채소는 값이 요동치는 상품이다
채소는 오래 저장하기 어렵고, 다른 작물로 전환하기도 비교적 쉽다. 가격이 조금 오르면 재배가 몰려 이듬해 가격이 급락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재배가 줄어 다시 공급이 부족해진다. 이 순환이 채소 가격의 변동 폭을 키운다.
이러한 가격 변동은 생산자와 수요자를 동시에 위협한다. 농가는 가격이 급락하면 생산 기반을 잃고, 가공·외식업체는 물량과 가격을 예측할 수 없으면 일본산 채소를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결국 채소 정책의 핵심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가격 변동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읽기 가이드. 일본의 해법은 세 겹으로 구성된다. 산지를 조직화해 교섭력을 높이고, 외식·가공업체와 직접 연결해 판로를 확보하며, 브랜드화로 단가를 지킨다. 이제 각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첫째 겹 — 흔들림을 누르려면 ‘계획’이 필요하다
가격 변동을 줄이는 방법은 계획 생산이다. 출하 시기와 물량을 미리 조정하면 과잉과 부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개별 농가만으로는 전체 수급을 고려한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자기 농장의 사정은 알 수 있어도 전국의 생산량과 출하량을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지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는다. 일본에서는 농협(JA)의 계통출하가 이 역할을 한다. 농가가 생산물을 농협에 공동 출하하면 농협이 선별·집하·판매를 맡는다. 이렇게 확보한 규모가 산지의 교섭력으로 이어진다. 조직화 없이는 계획 생산도 교섭력 확보도 어렵다.
읽기 가이드. 국가는 가격 상승을 직접 억제하기보다 가격이 하락할 때 생산 기반을 지탱한다. 평년 가격의 90%를 기준으로 차액을 보전하고, 그 밖의 가격 형성은 시장에 맡긴다. 재원은 국가 60%·지자체 20%·농가단체 20%로 분담해 어느 한쪽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한다.
여기에 남북으로 긴 국토와 기후차를 이용해 산지를 옮겨 가며 연중 공급하는 ‘산지 릴레이’가 더해진다.
둘째 겹 — 도매시장 경유율을 낮춘 수요의 변화
도매시장 경유율 하락을 곧바로 시장의 쇠퇴로 해석하면 변화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주요 원인은 수요 구조의 변화에 있다. 1인 가구와 고령층,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가정에서 직접 조리하기보다 완성된 음식을 사 먹는 나카쇼쿠(中食)와 외식, 가공용 채소 수요가 커졌다.
이들 수요처가 요구하는 거래 조건은 도매시장 경매와 다르다. 가공·외식업체는 매일 달라질 수 있는 규격·품질·물량과 가격을 감당하기 어렵다. 정해진 규격의 채소를 정해진 양과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를 원한다. 이에 따라 유통 방식도 시장 경매에서 계약재배와 산지 직송으로 옮겨 간다.
일본은 이러한 계약 수요를 수입산에 내주지 않기 위해 일본산 채소의 계약재배를 확대했다. 도쿄 오타시장이 취급하는 채소 57만 톤 가운데 24%도 시장 내 경매를 거치지 않고 산지에서 소비지로 직접 공급된다(2023년 기준).
셋째 겹 — 물량은 지켜도 값은 못 올린다
조직화와 계약재배는 물량과 판로를 안정시키지만, 그것만으로 단가를 높이기는 어렵다. 대량으로 거래되는 표준 규격 채소는 가격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으려면 다른 상품과 구별되는 근거, 즉 차별화가 필요하다.
다만 양배추·무처럼 흔한 채소는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브랜드화는 모든 채소가 아니라 지역성과 역사성을 지닌 품목에 집중된다. 교토의 ‘교야사이(京野菜)’, 가나자와의 ‘가가야사이(加賀野菜)’처럼 지역·역사·품종이 결합된 채소가 대표적이다. 2015년 도입된 지리적 표시(GI) 제도는 이러한 차별성을 법적으로 보호해 모방을 막는다.
세 개가 아니라 왜 세 ‘겹’인가
세 겹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한다. 조직화는 물량을 안정시키지만 가격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고, 계약재배는 판로를 보장하지만 높은 단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브랜드화는 단가를 높일 수 있지만 일부 품목에만 적용할 수 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일본산 채소의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
한국엔 어떤 뜻이 있나
한국의 채소 유통은 개별 출하와 밭떼기 거래, 도매시장 경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산지가 하나의 ‘계획 주체’로 충분히 조직되지 못한 것이다. 산지유통센터(APC)는 약 341개소지만, 농협이 농산물을 직접 매입해 판매하는 매취 비중은 40.2%에 그친다(APC 이용실태 연구).
가격 안정 방식도 다르다. 한국은 계획 생산이나 생산자 부담금과 연계하기보다 가격이 떨어진 뒤 차액을 메우는 사후 보전에 무게가 실려 있다. 계획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가격이 높은 품목으로 재배가 몰리는 현상을 억제하기 어렵다.
| 구분 | 일본 | 한국 |
|---|---|---|
| 산지 조직화 | 계통출하 + 지정산지 890곳 | APC 341개소, 매취율 40.2% |
| 가격 안정 | 계획생산·부담금 + 계약물량만 보전 | 사후 차액보전 중심 |
| 브랜드 | 지역 브랜드·GI로 연계 | 일부 지역 단위에 한정 |
왜 한국의 채소 산지는 일본보다 덜 조직됐나
첫 번째 이유는 생산이 많은 소규모 농가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서 전체 농가의 51.9%는 경지면적이 0.5ha 미만이었다. 대표적인 노지채소는 이보다 더 잘게 나뉘어 있다. 고추는 26만 1,889농가가 3만 1,146ha를 재배해 농가당 단순 평균이 약 0.12ha, 1,190㎡였다. 노지배추는 13만 8,394농가가 약 2만 2천ha를 재배해 농가당 약 0.16ha, 1,600㎡로 추정된다. 배추 면적은 천ha 단위로 발표된 자료를 이용했으므로 근삿값이다.
이처럼 농가별 물량이 적고 필지가 분산돼 있으면 공동선별과 공동계산에 드는 비용이 커진다. 농가마다 품종과 품질, 출하 시기가 다르고 여러 작물을 번갈아 심기 때문에 하나의 계획에 맞춰 물량을 모으기도 어렵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영세·분산 경작과 소량·다품목 생산을 밭농업 조직화의 구조적 제약으로 지적하는 이유다.
그러나 농가 규모만으로 한·일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일본의 2020년 농림업센서스에서도 채소 재배 경영체는 28만 2,543곳, 재배면적은 26만 4,734ha였다. 단순 평균은 경영체당 약 0.94ha로, 일본에도 소규모 채소 농가가 많다. 일본 수치는 전체 채소, 한국 수치는 고추와 배추 한 품목씩을 대상으로 하므로 면적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두 나라 모두 소농이 많다는 사실은 규모보다 중요한 차이가 따로 있음을 보여준다.
정책이 축적된 순서도 달랐다. 일본은 1966년 지정산지 제도를 시작한 뒤 조직화된 산지에 계획 생산과 가격 보전을 결합해 왔다. 한국은 산지유통센터(APC)를 341개소까지 늘렸지만, 시설 확충이 곧 농가 조직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농협이 농산물을 직접 매입해 판매하는 비중이 40.2%에 그친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시설은 물량을 처리할 수 있지만, 농가가 해마다 같은 조직에 출하하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따라서 한국의 과제는 농가 규모를 키우거나 시설을 더 짓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일정 물량을 약정한 농가에 가격 안정과 수확 작업, 공동선별, 운전자금을 하나의 묶음으로 제공해야 한다. 조직에 참여할 때 밭떼기나 개별출하보다 가격 위험과 노동 부담이 실제로 줄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큰 농가를 만드는 정책보다 작은 농가도 계속 참여할 이유가 분명한 산지 조직이다. 그런 조직이 있어야 계획 생산이 가능하고, 그 위에서 계약재배와 브랜드화도 효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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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農林水産省 「青果物卸売市場調査」(2023); 流通経済研究所 청과물 유통 분석(2023); 農林水産省 「野菜生産出荷安定法」 및 지정산지·지정야채 자료; 農林水産省 「加工・業務用野菜をめぐる情勢」; 大田市場 취급실적(2023).
구조 비교: 통계청 「2020년 농업면적조사」,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 「2020년 고추 재배면적조사」; 호남지방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로 본 농어업 변화상」(2022); 農林水産省 「2020年農林業センサ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밭농업의 쟁점과 발전방향」(2014), 「채소류 주산지 제도 개편 및 경쟁력 강화 방안 연구」(2017), 「농산물 유통개혁을 위한 선결과제」(2026).
국내: 농림축산식품부 채소 수급·유통 자료(2024);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이용실태」 연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지리적표시(GI)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