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는 같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정책도 같이 다뤄도 될까
‘품목별 적정 규모’를 농정의 기준선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
농가 비율 (2024)
미만 농가 비율
(2024, 4년 새 −63%)
비율 (첫 과반)
수입 농산물 때문에 농사가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농사 지어서 답이 없다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모두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자주 빠집니다. 어떤 농가가, 어느 정도로 어려운가 하는 질문입니다.
2ha 미만 농가가 전체의 약 87%. 우리가 떠올리는 ‘한국 농가’의 풍경은 이 87%입니다.
그런데 같은 농가 안에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있습니다.
연간 1,000만 원은 4인 가족의 한 달 식비 정도입니다. 농업으로 한 해에 이 정도를 버는 농가가 전체의 64%입니다. 위 차트의 양 끝은 사실상 다른 산업입니다.
같은 정책이 두 세계 모두에게 적합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농정이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충분하지 않은 농정이 되어 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공백을 더 긴박한 문제로 만드는 것은 농촌의 시간입니다.
70세 이상을 제외하면 모든 연령대 농가 수가 줄었습니다. 특히 40세 미만 청년농은 4년 만에 63% 감소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10년 후의 농촌은 지금과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농지는 남고, 농민은 줄어듭니다. 누가, 어떤 단위로 농사를 지을 것인가에 답하려면 먼저 어떤 규모가 어떤 품목에 적정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같은 질문을 일본과 EU는 더 일찍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농업이익창조연구소가 2022년 보고서(2020년 통계 데이터 기반)에서 분석한 결과는 흥미로운 패턴을 보여줍니다. 같은 ‘규모 확대’라도 품목별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 영농유형 | 소득률 패턴 | 정점 매출 규모 | 해석 |
|---|---|---|---|
| 보통작 (쌀·맥류·콩) |
📈 우상향 | 약 2,000만 엔 (~20ha) |
기계화·정책지원으로 규모가 클수록 유리 |
| 과수 | 📈 우상향 (완만) | 약 2,000~3,000만 엔 | 소규모에서도 일정 수익률 확보 가능 |
| 채소 | ⛰️ 산형 (정점 후 하락) | 약 1,500~2,000만 엔 | 이 규모를 넘으면 오히려 효율 저하 |
| 낙농·육우 | ⛰️ 산형 (정점 후 하락) | 품목별 상이 | 설비 가동률·노동생산성 한계 |
쌀·과수는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지만, 채소·축산은 일정 규모를 넘으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집니다. 품목마다 다른 적정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데이터가 직접 보여줍니다.
이 결론은 기술 측면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됩니다. 일본 미쓰비시종합연구소(MRI)는 2025년 3월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스마트농기 도입 효과와 추가 비용 부담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활용해 효과를 낼 수 있는 농업경영체는 비교적 큰 경영 규모가 중심이 된다. 농업경영체의 경영규모를 고려한 타겟팅이 필수다.”
— 三菱総合研究所(MRI), 「日本農業における生産性向上のポイント」(2025.3)
EU의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2024년 EU FADN(Farm Accountancy Data Network) 분석은 농가 규모와 기술효율성의 관계가 역U자형(∩자형)으로 나타난다고 보고했습니다.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효율이 떨어지고, 중간 규모에서 최적이 됩니다. EU는 이 결과를 받아 2023~2027 공동농업정책(CAP)에서 중규모 농가에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배정했습니다.
핵심은 지원 자원을 규모대별로 다르게 배분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농가는 단순화된 직접지불과 시장 경쟁력 강화에, 중규모 농가는 효율 최적화와 스마트농업 도입에, 대규모 농가는 환경·지속가능성 조건부 지원에 — 이렇게 지원 방식이 달라야 정책 효과가 살아납니다.
적정 규모는 한 줄로 정의되는 숫자가 아닙니다. 다음 요소들이 동시에 맞물리는 최적의 균형점입니다.
- 소득: 투입비를 회수하고 도시 근로자 평균에 준하는 농업소득을 내는 면적·두수
- 농기계 효율: 트랙터·이앙기·콤바인 등 보유 농기계의 가동률이 손익을 넘기는 면적. MRI 분석처럼, 스마트농기는 일정 규모 이상에서야 비로소 작동합니다.
- 인력 동원: 가족노동·고용노동·작업 위탁이 낭비 없이 맞아떨어지는 작업량
- 농지 조건: 평지·중산간·시설농지 여부, 필지 모양, 관개·접근성 — 같은 품목도 지역마다 다릅니다
- 완충 능력: 가격 변동·재해를 흡수할 여력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각 농가가 자기 조건에서 찾아가는 최적화 과정입니다. 정책의 역할은 이 최적화를 돕는 정보·지원·제도를 갖추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농가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농지와 농기계를 보면서 “조금 더 늘리면 어떨까”, “지금 규모로는 트랙터가 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일상의 판단을 정책 차원의 데이터·지표로 뒷받침하자는 것입니다.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의 들녘 농가들이 모여 운영하는 늘봄영농조합법인은 한국에서 드문 주주형 공동농업의 사례입니다. 개별 농가가 자기 농지를 출자하고 법인이 영농을 통합 운영하면서, 집합적으로 적정 규모를 달성합니다. 들녘경영체 사업과 결합되면서 개별 농가로는 도달할 수 없던 규모의 경제와 농기계 가동률을 함께 누립니다. 적정 규모는 반드시 한 농가가 혼자 달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영농대행 기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들녘경영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주주형 공동농업이 시범 단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 변화들에 공통된 정책 기준선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들녘경영체가 통합한 면적이 적정 규모인지, 주주형 공동농업의 배당이 적정 농업소득을 보장하는지 — 이 질문들에 답할 공통의 자가 필요합니다.
* 예시 비전입니다. 실제 비율은 품목별 적정 규모 산정 후 결정됩니다.
적정 규모를 농정의 기준선으로 도입한다는 것은 농가를 나누어 차별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지원 방식을 농가의 조건에 맞게 차별화하자는 뜻입니다. 세 가지 길에는 위계가 없습니다. 어떤 길을 갈지는 각 농가의 선택입니다.
- 적정 규모 도달 농가: 농업소득 변동 안정화 + 스마트농업 도입 지원. MRI 분석처럼 스마트농기는 이 규모대에서 비로소 비용 대비 효과를 냅니다.
- 적정 규모 미달 농가: 공동경영체로 집합적으로 적정 규모 달성. 들녘경영체·주주형 공동농업·영농대행 기업의 제도적 위상 정립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 소규모 남는 농가: 농업소득 외 다른 경로. EU Small Farmers Scheme처럼 단순화된 직접지불, 농촌 어메니티·환경 서비스, 농촌 복지·연금 강화.
지금처럼 모든 길을 한 가지 도구로 다루면, 모든 길에서 도구가 부족합니다.
시사점
농가는 같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힘든 것은 아니며, 같은 도구로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의 분석은 품목마다 적정 규모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스마트농업조차 일정 규모 이상에서야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EU는 규모대별로 정책 자원을 다르게 배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 농정에 비어 있는 것은 농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농가의 조건에 맞는 정책 도구입니다. KIFC는 향후 품목별 적정 규모 산정 방법론을 시민·연구자 협력으로 정리하고, 데이터 허브를 통해 공개해 갈 계획입니다.
참고문헌
- 통계청. (2025). 2024년 농림어업조사 결과. 국가데이터처. https://kostat.go.kr/
- 農業利益創造研究所. (2022). 規模拡大は万能か? 農業所得率から見る適正規模とは. https://nougyorieki-lab.or.jp/
- 三菱総合研究所(MRI). (2025, 3月). 日本農業における生産性向上のポイント — 品目別収支構造からみた課題と戦略. https://www.mri.co.jp/
- Yang, F., Wu, G., Riaz, N., & Radlińska, K. (2024). Technical efficiency and farm size in the context of sustainable agriculture. Agricultural Economics, 70(9), 446–456. https://doi.org/10.17221/158/2024-AGRICECON
- European Commission. (2023). Common Agricultural Policy 2023–2027. https://agriculture.ec.europa.eu/
- 식량과기후. (2026, 4월). 일본은 왜 ‘구조’를 먼저 말하는가 — MRI 보고서가 말하는 스마트농업의 진짜 출발점. https://www.foodandclimate.or.kr/2026/04/16/japan-smart-ag-01-structure-fir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