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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이 답이다 — 재생농업의 가능성과 한계
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식량·기후 교육자료 ③. 흙을 살리면 기후가 나아질까? 기대와 논쟁을 균형 있게 읽는 가이드
“발바닥 아래 살려둔 흙 한 스푼 안에, 지구 전체 인구보다 많은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살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식품이 기후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①), 식품이 이동하는 거리(②)가 왜 중요한지를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농업이 기후위기의 원인이자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1. 토양은 ‘흙’이 아니라 ‘생태계’다
많은 사람이 토양을 ‘그냥 땅’으로 생각하지만, 건강한 토양은 살아있는 생태계입니다. 건강한 흙 한 티스푼(약 5g) 안에는 수십억 마리의 박테리아와 수km에 이르는 곰팡이 실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박테리아, 곰팡이, 원생동물, 선충류가 서로 먹고 먹히며 복잡한 먹이사슬을 이룹니다.
식물 뿌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곰팡이 중 균근균(菌根菌, mycorrhiza)이 있습니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 일부를 뿌리를 통해 이 곰팡이에게 나눠 주고, 곰팡이는 그 대가로 토양 깊은 곳의 물과 영양분을 식물에게 전달합니다. 자연은 수억 년 전부터 이미 물물교환을 해온 셈입니다.
지구의 토양은 대기보다 약 3배, 모든 육상식물보다 약 4배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12,000년 농경 이후 토양에서 대기로 날려버린 탄소는 약 133 Gt — 화석연료 연소 역사 배출량의 약 30%에 해당합니다(Sanderman et al. 2017). 이 잃어버린 탄소를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기후에 의미 있는 기여가 됩니다.
2. 재생농업이란 무엇인가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은 단일한 기술이나 인증 체계가 아닙니다. 토양을 건강하게 되살리고, 생물 다양성을 회복시키며, 가능하다면 탄소를 땅으로 되돌리려는 모든 농업 실천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지속가능(sustainable)’이라는 말이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한다”는 뜻이라면, ‘재생(regenerative)’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좋아지게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재생농업은 특정 기술이나 인증이 아니라 이 5가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든 실천을 포괄합니다. 유기농업과 겹치는 부분도 많지만, 재생농업은 ‘무엇을 쓰지 않는가’보다 ‘무엇을 되살리는가’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 다릅니다.
3. 재생농업이 하는 일 — 네 가지 효과
재생농업이 약속하는 효과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다만 각 효과의 검증 수준이 다릅니다. 아래에서는 과학적 근거 강도를 함께 표시합니다.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단, “얼마나 있는지”는 조건마다 다릅니다. 특히 탄소 격리(①)는 기후 해법으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생물 다양성 회복(③)은 논란의 여지가 가장 적어, 이것만으로도 재생농업을 추진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4. 뜨거운 논란 — 재생농업은 기후위기를 구할 수 있을까
재생농업은 최근 몇 년 사이 정책·기업·소비자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기후위기의 해답”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만큼의 효과가 있을까요? 논쟁은 지금도 격렬합니다.
논란의 핵심은 측정 문제, 탄소 포화, 누출(leakage)입니다. 특히 한 농지의 토양 탄소를 늘리기 위해 거름을 투입하면, 그 거름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땅이 필요해집니다. 한 곳을 살리면 다른 곳이 훼손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KIFC의 판단
재생농업은 농업을 바꾸는 중요한 방향이지만, 기후위기를 단독으로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화석연료 사용 감축이라는 ‘핵심 과제’를 대체할 수 없고, 과도한 기대로 포장된 기업의 그린워싱에 이용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토양 건강·생물 다양성·물 순환·농업 회복력이라는 재생농업의 다른 가치들은 논란의 여지가 훨씬 적고, 이 가치만으로도 재생농업은 충분히 추진할 가치가 있습니다.
“재생농업은 탄소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와 “재생농업은 필요하다”는 양립 가능한 결론입니다. 두 입장을 모두 살피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시민의 몫입니다.
5. 세계의 재생농업 흐름
🇺🇸 미국: Rodale Institute의 60년 장기실험
1947년 설립된 Rodale Institute는 1981년부터 유기농 vs 관행농 장기비교 실험(FST)을 진행 중입니다. 수십 년의 데이터가 쌓여 재생농업·유기농업의 과학적 뿌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EU: 공동농업정책(CAP) 에코스킴
2023년부터 강화된 공동농업정책에서 ‘에코스킴(Eco-scheme)’이라는 환경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피복식물·윤작·무경운 등 재생농업 핵심 요소를 실천하는 농가에 추가 지불금을 지원합니다.
🇦🇺 호주: 건조지대의 방목 재생
호주는 관행화된 건조·반건조 방목지에서 ‘홀리스틱 매니지먼트’ 방식의 계획 방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앨런 세이버리의 주장 일부는 이후 검증 과정에서 상당 부분 비판받았습니다.
🇯🇵 일본: 환경보전형 농업 직불제
2007년부터 ‘환경보전형 농업 직불제’를 시행해 피복식물, 유기질비료 사용, 화학비료·농약 절감 등을 실천하는 농가에 지불금을 지급합니다. 한국의 친환경농업 직불제 모델 참고 대상입니다.
🇮🇳 인도: 제로예산자연농업(ZBNF)
남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는 화학투입재 없이 지역 자원만으로 농사짓는 ZBNF를 주 정책으로 추진해 수백만 농가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 한국: 친환경농업 5개년 계획
2025년 12월, 제6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2026~2030) 발표. 2030년까지 친환경 인증면적 2배 확대 목표. 탄소저장 프로그램 예산이 2024년 90억에서 2025년 233억으로 2.6배 증가했습니다.
6. 한국에서 재생농업은 가능한가
미국·호주 스타일의 대규모 방목 재생농업은 한국 여건에 맞지 않습니다.
| 지표 | 한국 | EU | 미국 |
|---|---|---|---|
| 평균 경작면적 | 약 1.6 ha | 약 17 ha | 약 180 ha |
| 농가 고령화 | 65세 이상 50% 이상 | 약 30% | 약 33% |
| 현황 | 소규모·고령·기계화 한계 | 중규모·정책 지원 | 대규모·기계화 |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은 소규모 다품목 농가의 피복식물, 윤작, 무경운 재배, 바이오차 투입, 벼농사에서의 논물 간단관개(AWD) 같은 개별 실천들입니다.
현재 한국 친환경농업 인증 면적은 약 7만 1천 ha(2025년 추정)로 전체 경지면적의 약 4.7%입니다. 정부 목표는 2030년까지 9% 수준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 한국 재생농업의 핵심 과제
① 전환기 소득 보전 — 수확량이 일시 감소하는 기간을 농가가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② 지식·기술 보급 — 농촌진흥청·지자체 농업기술센터 중심의 현장 교육이 필요합니다.
③ 소비자 지지 — 친환경·저탄소 농산물에 대한 합리적 가격 형성과 안정적 판로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7. 시민·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
🛒 소비자로서
친환경·저탄소 인증 농산물 구매. 로컬 푸드 직매장·꾸러미 이용. “재생농업” 라벨을 달았어도 구체적 실천이 있는지 확인하는 비판적 소비.
🌱 직접 체험
학교 텃밭·주말농장 체험으로 건강한 흙 만지기. 맨땅 vs 피복된 땅, 관행 vs 저투입 방식 비교 관찰.
🏫 공공급식 요구
학교·공공급식에서 지역 친환경 농산물 사용 요구. 지자체 정책 의견 제출. 학생회·학부모회 활동과 연계.
🗳️ 시민 공론장에서
탄소저장 직불제의 투명하고 과장 없는 운영에 시민 감시 기여. 농지 보전 정책에 관심 갖기 — 한 번 사라진 농지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8. 시리즈 안내
🌿 KIFC 식품과 기후 시리즈
- ① 내 접시 위의 기후 — 탄소 발자국 이야기: 식품이 기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 ② 내 식탁까지의 거리 — 푸드 마일 이야기: 거리와 공급망이 말해주는 것.
- ③ 토양이 답이다 — 재생농업의 가능성과 한계 (현재 자료): 농업이 기후의 가해자이자 해결자가 될 수 있는가.
세 자료를 함께 읽으면 “무엇을·어떻게·어디서·어떤 방법으로 생산해 먹을 것인가”라는 식량 체계의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9. 교사·진행자를 위한 활용 가이드
⏱ 수업 시간별 구성
- 40분: ① 도입(5분) → ② 토양 생태계·탄소 저장고(10분) → ③ 재생농업 5원칙(10분) → ④ 논란 소개(10분) → ⑤ 정리(5분)
- 60분: 위 + 한국 정책 현황 + 실천 카드
- 90분 워크숍: 위 + 조별 “찬성vs비판 모의 토론” + 우리 지역 재생농업 시나리오 만들기
💬 토론 질문
- 토양을 ‘흙’이 아니라 ‘생태계’로 바꿔 보는 것이 우리의 농업·식생활 이해에 어떤 차이를 만들까?
- 재생농업의 한계를 본 다음에도, 우리가 재생농업을 추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 한국의 농업 구조(소규모·고령화)에서 재생농업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 기업이 “재생농업” 라벨을 마케팅에 쓰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것과 재생농업을 확산하는 것은 양립 가능한가, 충돌하는가?
10. 더 알아보기 — 심화 카드
🔬 과학: 균근균과 글로말린
식물 뿌리와 공생하는 균근균은 ‘글로말린(glomalin)’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해 토양 알갱이 구조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이 구조가 탄소를 오래 저장하는 핵심입니다. 경운(쟁기질)은 균근균을 끊어 이 시스템을 파괴합니다.
♻️ 기술: 바이오차(Biochar)
농업 잔재물(볏짚·왕겨·나뭇가지)을 산소 부족 상태에서 350~700℃로 구운 ‘농업용 숯’. 토양에 넣으면 수백~수천 년 동안 분해되지 않아 탄소를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 탄소저장 프로그램 지원 대상에 포함됩니다.
🐄 논쟁: 방목 소고기가 탄소를 격리할까
앨런 세이버리의 ‘홀리스틱 매니지먼트’는 계획 방목이 탄소를 격리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2017년 Oxford 대학 FCRN 보고서 Grazed and Confused?는 “격리 효과는 제한적이고 메탄 배출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자연방목=친환경’ 통념에 주의 필요합니다.
⚠️ 주의: “재생농업” 라벨의 함정
현재 재생농업에는 통일된 국제 표준이 없습니다. 어떤 실천이 포함되는지 검증이 쉽지 않아 그린워싱에 활용되기 쉽습니다. 일부 대기업이 재생농업 마케팅을 쓰지만 실제 전환은 미흡한 경우도 있습니다. ‘재생농업’ 단어보다 구체적 실천과 측정 가능한 효과를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주요 참고문헌
- Lal, R. (2004). Soil Carbon Sequestration Impacts on Global Climate Change and Food Security. Science 304(5677), 1623–1627. doi:10.1126/science.1097396
- Sanderman, J. et al. (2017). Soil carbon debt of 12,000 years of human land use. PNAS 114(36), 9575–9580.
- Zomer, R.J. et al. (2017). Global Sequestration Potential of Increased Organic Carbon in Cropland Soils. Scientific Reports 7, 15554.
- World Resources Institute (2020). Regenerative Agriculture: Good for Soil Health, but Limited Potential to Mitigate Climate Change. wri.org
- FCRN / Oxford (2017). Grazed and Confused? Food Climate Research Network.
- Libohova, Z. et al. (2018). Reevaluating the effects of soil organic matter on available water-holding capacity. Journal of Soil and Water Conservation 73(4), 411–421.
- Rodale Institute (2020). Regenerative Organic Agriculture and Climate Change (White Paper).
- 농림축산식품부 (2025). 제6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2026~2030). 2025.12.29 발표.
- USDA NRCS. Soil Health Principles. nrcs.usda.gov
본 자료는 사단법인 식량과기후(KIFC)가 시민·청소년 교육용으로 작성한 참고자료입니다. 재생농업은 현재 논쟁이 활발한 주제이므로, 수치와 효과는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료 기준: 2026년 4월